'뻐꾹, 뻐꾹!'

6일 오전 11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조재혁(47)이 스웨덴 작곡가 요나손의 '뻐꾹 왈츠'를 피아노로 치는 순간 객석엔 "어머, 뻐꾸기!" 하며 웃음이 번졌다. 또렷한 두 음정으로 뻐꾸기 울음소리를 묘사한 이 왈츠는 피아노를 배운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칠 수 있는 곡이다.

"저도 유치원 때 처음 쳐보고 청중 앞에서 연주하기는 처음입니다." 객석에 다시 한 번 큰 웃음이 터졌다.

매월 둘째 주 목요일 오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늘 붐빈다. '11시 콘서트' 때문이다.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이 2004년 시작한 11시 콘서트는 당초 저녁 공연을 보기 어려운 주부 관객을 겨냥했지만 저렴한 가격(2만~2만5000원)과 알찬 프로그램 덕에 전 연령대의 인기를 끌고 있다.

무대에 피아노를 두고 핵심 선율을 손수 연주해주며 설명하자는 아이디어는 조재혁이 냈다. “피아노는 색깔이 없는 악기라 모든 악기 소리를 흉내 낼 수 있어요. 백문이 불여일견! 시연해서 들려드리는 게 제일 빠르죠.”

[피아니스트 조재혁 프로필]

2017년 인기의 중심엔 조재혁이 있다. 지난 1월부터 새로운 해설자로 나선 그의 별명은 '클래식 해설계의 지드래곤'이다. 말쑥한 외모와 조근조근한 말솜씨로 이름났다. 소위 '속살을 발라내 떠먹여주는 해설'이다. 가령 이런 식.

"보통 곡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반면 20세기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는 약간 정신이 없어요. 다장조로 '솔도미라솔'을 즐겁게 오르내리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다른 조로 가기 때문이죠. 어디를 가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 그게 그의 시그니처예요."

지난 1~3월 콘서트를 찾은 관객은 총 534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572명)과 비교해 700명 이상 늘었다. 1월 콘서트는 전 석 매진. 이날도 합창석을 제외한 2200석이 꽉 찼다. 전해웅 예술의전당 예술사업본부장은 "요즘 관객들은 작품 뒷이야기만으론 부족하다 여긴다. 조씨는 곡에서 가장 많이 쓰인 하모니는 무엇이고, 다른 작곡가의 작품에선 어떤 식으로 쓰였나까지 보여주니 관객의 만족감이 높다"고 했다.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지휘 여자경)와 피아니스트 이미연,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이 함께한 이날 콘서트는 라벨 '치간느',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봄의 소리',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2번 1~2악장,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로 채워졌다.

콘서트가 끝난 뒤 조재혁은 "사랑하는 이와 얘기 나누는 마음가짐으로 선다"고 했다. "클래식이 인기 없는 건 어려워서거든요. 그래서 저는 해설이 있는 콘서트가 좋아요. '싫어!' 하는 사람에게도 자꾸 맛을 보여주면 종교를 전도할 때처럼 점점 물들어서 애호가가 됩니다."

두 시간 공연을 위해 그가 준비하는 시간은 공연 당일에만 네 시간이 넘는다. 조재혁이 '영업기밀'을 꺼냈다. 곡에 대한 정보와 느낌을 빼곡히 담은 10여장의 A4용지였다. 매달 주제와 곡목을 정하는 건 그의 몫이다. 리허설에도 참여해 연주를 관찰하고, 설명을 위해 예정에 없던 곡도 즉석에서 친다. 당일에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머리로 자신만의 리허설을 한다.

"클래식은 외국어와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모르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지만 배우기 시작하면 아는 단어가 차차 들리면서 뜻을 맞힐 수 있게 돼요. 음악도 생각 없이 들으면 흘러가버리는데 조금씩 공부하면 예전엔 몰랐던 게 어느 날 확 다가오죠. 본업이 피아니스트인 제가 해설을 하면서 더 많이 공부하게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