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선 선거 비용 제한액 509억
10% 이상 득표해야 정부 전액 보전

“10%대 지지율이 나오지 않는 대선 주자들은 낮은 지지율 뿐만 아니라 ‘돈’ 때문에 완주를 못할 수 있다.”

각 당이 조기 대통령 선거에 뛸 ‘대표 주자’들을 속속 확정하면서 ‘돈의 전쟁’도 시작됐다. 대통령 선거에는 후보 1명 당 수백억 원의 선거 자금이 필요하다. 지난 18대 대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479억1553만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84억9929만원을 사용했다고 신고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대 대통령 선거의 후보 1명 당 선거 비용 제한액을 509억9400만원으로 책정했다. TV광고 등 국민들이 지켜봤던 정상적인 선거운동을 모두 다 할 경우 대선 주자들은 400억~500억원 가량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각 당의 대선 주자들이 500억원에 가까운 선거 비용을 자비(自費)로 충당하긴 쉽지 않다. 따라서 후보자들은 본인이 속해 있는 당의 자금, 각종 후원금과 선거 펀드 등에 손을 벌려 수백억 원의 선거 자금을 마련한다.

문제는 선거 비용 보전 규정이다. 정부는 대선에서 후보자가 1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해야만 선거 비용을 보전해 준다. 10% 미만을 득표한 후보자들은 선거에서 진 것도 서러운데, 수백 억원의 선거 비용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대선에서 10% 미만 득표율을 기록하면 선거 비용을 되돌려 받을 수 없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10%대 지지율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은 낮은 지지율 뿐만 아니라 ‘돈 문제’도 상당한 고민 거리일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 1인당 약 500억원 필요, 득표율 낮으면 보전금 '0원'

최대 500억원에 이를 수 있는 대선 주자들의 선거 비용은 선거사무원 인건비, 공보물 제작과 발송, 현수막 제작과 설치, 유세차 임대, 로고송, 인터넷 광고, 전화나 문자 홍보, TV광고 제작 등에 투입된다.

선거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TV·라디오·신문 광고 및 TV·라디오 연설 등이다. 선거 비용의 40%로 약 200억원 안팎이 TV와 라디오를 이용한 홍보에 투입된다. 후보자들에게는 선거 운동원 인건비도 부담이다. 인건비는 대체로 전체 선거비용의 20∼25%를 차지한다. 인건비는 동원되는 인원수에 비례해 비용은 늘어난다. 유세차 비용도 만만치 않다. 1대당 약 2500만 원이 든다. 선거공보물 비용은 가구당 200원 안팎으로 적어 보이지만 보내는 가구 수에 따라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대선 주자들은 비용을 자비와 당의 지금, 각종 후원금과 선거 펀드 등을 활용해 충당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올해 대선이 있기 때문에 대선 주자를 선출한 당에 경상 보조금 1년 치를 추가로 지급할 예정이다. 선관위는 421억4200만원의 선거 보조금을 이달 배급할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이 124억845만원을 받을것으로 예상돼 지원금이 가장 많다. 자유한국당은 120억579만원, 국민의당은 86억6382만원, 바른정당은 63억68만원, 정의당은 27억5517만원을 지원 받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 각 당 대선 주자들은 후원금으로 1인당 약 50억원을 모을 수 있다. 정치자금법은 대통령 후보나 정당의 대통령 경선 후보가 후원회를 통해 선거 비용 제한액의 5%까지만 모금할 수 있게 한다. 올해 19대 대선 선거비용 제한액은 1인당 509억9400만원으로 5%는 약 25억원이다. 또 대선 주자들은 경선에서 이겨 당의 대표 주자가 되면 5%를 추가로 모집할 수 있다.

대선 주자들은 선거 펀드를 활용하기도 한다. 후보자들이 선거비용 마련을 위해 국민에게 선거 자금을 빌리는 것으로, 선거가 끝난 뒤 이자와 함께 투자금을 되돌려 주는 방식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 약속펀드’로 250억 원을 모았고, 문 전 대표는 ‘담쟁이 펀드’로 300억 원을 모았다.

결국 대선 주자들은 선거 비용을 당과 지지자들에게 ‘빚’을 져 마련하는 셈이다. 하지만 최종 투표 날 득표율이 낮을 경우 빚을 갚을 방법은 없어진다. 정부는 대선에서 후보자가 당선되거나 15% 이상 득표율을 기록하면 선거 비용 전액을 보전해 준다. 10∼15% 미만의 득표를 했을 때는 선거 비용의 절반을 보전해 준다. 그러나 대선 주자가 10% 미만 득표율을 기록하면 정부는 한 푼도 보전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지지율이 낮은 대선 주자들은 후원금이나 선거 펀드로 돈을 모집하기도 쉽지 않다. 지지자들과 투자자들은 후보자가 정부로 부터 돈을 보전 받기 어렵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조선일보DB

◆ 유승민, 김종인 등 선거 비용 부담 있을 듯

최근 여론 조사에서 10% 미만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후보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홍준표 경남지사,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등이다. 이 중 홍준표, 유승민, 심상정 후보는 소속 정당의 대표 대선 주자로 확정된 상태다.

이들 대선 주자들은 모두 선거 비용이 부담스럽겠지만, 범(凡) 보수 정당의 후보들의 고민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홍 후보와 유 후보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대표 주자로 대선을 완주해야 하는데 지지율이 1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홍 후보는 유 후보 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국회와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이 지난달 23일 공개한 '2016년도 재산 변동 신고 내역' 등에 따르면 홍 후보의 개인 재산은 25억5554만원에 불과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정부로 받는 선거보조금이 120억579만원에 이른다. 대표적인 보수정당이자 집권 여당을 지냈던 자유한국당은 당이 보유한 자산도 다른 정당에 비해 풍부하다. .

문제는 유 후보다.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에서 분리돼 나온 신생 정당이다. 당에 속한 국회의원도 33명 밖에 안된다. 역사가 짧고 의석 수가 적기 때문에 선관위로부터 받을 수 있는 선거 보조금도 63억68만원에 불과하다. '2016년도 재산 변동 신고 내역'에 따르면 유 후보의 개인 재산은 48억3612만원이다. 유 후보가 전 재산을 내놓고, 당이 선거 보조금을 모두 투입해도 110억원을 겨우 마련할 수 있다. 바른정당은 창당한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보유한 재산도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런 상황에서 유 후보가 최종 투표에서 10%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하면 정부로부터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하면서 당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바른 정당 관계자는 “솔직히 돈 문제가 부담스럽다”라며 “유 후보가 계속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선거 비용에 대한 부담도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10%대 미만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선 주자들이 선거 비용 문제로 대선을 완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후보 단일화로 합종연횡을 시도하는 것엔 선거 비용 문제도 깔려 있다는 것이다.

대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같은 경우도 속한 당이 없기 때문에 선거 비용 마련에 고민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전 대표의 개인 재산은 86억5388만원으로 추정된다.

범 보수정당 소속 한 의원은 “홍준표 후보는 어느 정도 당에서 선거 비용에 대해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유승민 후보와 김종인 전 대표 등이 대선을 완주하지 못한다면 선거 비용에 대한 부담도 이유로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