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가장 유명한 '부산+미국인'은 부산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로버트 할리'(한국명 하일) 광주외국인학교 이사장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일 오후로 로버트 할리는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생겼다.
켈리 교수는 지난 10일 BBC 방송과 화상 전화를 연결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을 설명하다가, 일종의 '방송사고'를 겪었다. 어린 두 자녀가 천진난만하게 '난입'한 영상은 페이스북에서만 6600만뷰를 기록 중이다.
"지난 주말부터 켈리 교수에 대한 인터뷰 요청 전화가 폭주하고 있어요. 다른 업무를 아예 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국내 언론사·외신 특파원은 물론이고, 미국·영국·호주·브라질에서 비행기 타고 취재를 오겠다고 해요. 요청을 거절하니까, 어떤 언론사는 수업시간을 찍으러 오겠다고 하고…. 그래서 인터뷰 날을 잡을지 검토 중입니다." (부산대 제해치 홍보팀장)
본지도 지난 11일 켈리 교수에게 카카오톡으로 인터뷰 요청 문자를 보냈다. 그는 일단 이렇게 거절했다.
"I'm sorry. We are not speaking to media at this time. Our children are very young, and they have been very over-exposed by this. Thank you." (미안합니다. 아이들이 너무 어린데 이번 일로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고, 그래서 지금 시점에선 인터뷰를 할 수 없어요. 고맙습니다.)
그는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고, 2008년 9월 공개채용으로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이번 학기에는 '미국정치론'과 '국제분쟁과 테러리즘' 수업을 맡고 있다.
부산대 홍보팀에 계속해서 밀려드는 취재 문의 탓에 켈리 교수는 일단 내일(15일) 몇몇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기로 한 상태. 본지는 부산대 학생들에게 켈리 교수의 평소 모습에 대해 물어봤다.
부산대학생들 "깐깐해요" "학점 잘 안줘요"
켈리 교수의 강의를 들어봤다는 졸업생 김모(26)씨는 "2학년 때, 수업을 듣다가 성적이 잘 안 나올 것 같아 한달만 듣고 수강 철회를 했었다"며 "교수님이 당시 과제도 엄청 많이 내주고, 학점도 칼 같이 매긴다는 소문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강의계획서에는 '수업 시간엔 휴대폰을 끄시오' '앞자리가 비어있으면, 뒤에 앉거나 구석에 앉지마시오'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나와있다. 책상 밑으로 몰래 휴대전화를 놔두고 문자를 보내서도 안된다고 한다.
"영상 중간에 아이들이 춤추면서 들어올 때 눈을 감고 꾹 참으시는 모습을 보고, 옛날 수업 듣던 시절 생각이 났어요. 가끔 수업할 때 답답하면 딱 그 표정을 지으셨거든요. 정(情) 많은 부산 학생들은 공과 사 구분이 철저한 교수님이 좀 차갑고 냉정하다고 느끼기 쉽죠. 하지만 영작문이 어려워서 개인적으로 찾아가면 꿈과 미래에 대한 조언도 해주시던 분이었어요."
부산대 정외과를 나온 배지열(28)씨는 "3년 전 수업 종강 후에 함께 수업을 들었던 친구 7명과 교수님 집에 가서 영화를 봤다"며 "피자 시켜 먹으면서 함께 영화 보고, 서로 느낀 점 이야기하고 그랬다. 이런 '무비 나이트'행사를 다른 수업에서도 종종 열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부산대 정외과 학생들은 "교수님이 한국인과 결혼한 것을 학생 대부분이 알고 있다"며 "사적인 이야기는 잘 안하지만, 이따금 '부인이 어그부츠(양털부츠)를 사 놓고선, 잘 안 신는다'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번 영상에도 출연하는 켈리 교수의 아내 김정아씨에 대해 이따금 이야기하곤 했다는 것.
또 다른 정외과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2년 전 '시사영어연구회' 동아리를 하면서 교수님께 '스피치 콘테스트 심사위원'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주말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거절하셨죠. 이번 영상을 보니 역시 가정적인 면모가 느껴지네요."
부산대 학생 커뮤니티에선 "지난해 2학기 수업에서 켈리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자주 흥분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그날 수업을 잠시 중단시킬 정도였다"고도 나와있었다. 실제로 켈리 교수의 트위터엔 트럼프에 대한 언급이 종종 등장한다.
켈리 교수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 나오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브렉시트·트럼프 현상으로 인한 세계적인 민주주의 쇠퇴 현상이 멈춰졌다. 이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가 대통령 되는 것을 막아야할 것"이라고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