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신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큐툴루’ 배지.

PC게임 잡지를 사면 사은품으로 정품 게임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잡지가 아니라 일반 책도 부록을 준다. 인터넷 서점은 물론 개별 출판사도 사은품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펜던트에 비매품 책까지

책 표지 디자인을 재활용한 폴더나 노트, 내부 이미지를 살린 엽서류는 기본. SF 소설 '안드로메다 성운'(아작)은 출간 이벤트로 도서 구매할 때 한정 수량의 '갤럭시 펜던트'를 함께 증정했다. 책을 사면 다른 책(비매품)을 끼워주기도 한다. '드러커 피드백 수첩'(청림출판사)은 책과 피드백 수첩을 함께 주고,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전 4권·황금가지)는 SF 전문가 12명의 글을 130쪽 분량의 책으로 묶어 증정했다.

바야흐로 '굿즈(Goods) 2.0' 시대. 일정액 이상을 구매하면 책과 관련된 팬시 상품을 주던 인터넷 서점의 '굿즈' 마케팅에, 개별 출판사도 팔 걷고 뛰어든 것이다.

업계는 최근 6개월 사이 출판사가 출간 이벤트로 사은품을 내놓는 현상이 보편화했다고 보고 있다. 소설가 김훈이 2015년 에세이집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를 냈을 때 사은품으로 라면과 양은 냄비를 주면서 도서정가제 위반 논란이 벌어진 지 약 1년 6개월. 최근 사은품 마케팅은 '적립 포인트(마일리지) 차감' 등의 방식으로 도서정가제 위반 논란도 피하고 있다.

◇'굿즈'만 따로 팔기도

사은품만 따로 사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민음사 자회사 '황금가지'는 지난달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를 시범 운영하면서 아예 자체 제작 사은품을 따로 판매하는 코너를 만들었다. 황금가지가 출간한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앙증맞은 '큐툴루 배지'(큐트한 크툴루·4000원), 국내 유명 판타지 소설 작가 이영도의 작품 이미지를 담은 노트 시리즈(권당 6000원) 등을 팔고 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라인프렌즈 파일

작년 매출 22% 급증에 '굿즈 이벤트'가 큰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터넷서점 알라딘도 사은품만 따로 살 수 있는 코너를 만들었다. 인터파크 역시 '굿즈#'을 통해 7000여종의 사은품을 따로 판매한다. 이곳은 책을 사면 굿즈를 최대 40%까지 할인해준다. 인터넷에서는 굿즈를 싸게 사려고 책을 샀다는 우스개가 적지 않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사은품이 효과가 있다는 것은 책이 기존의 '책'이라는 아우라를 잃고 하나의 상품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사은품 포화 상태, 전망은 미지수

SF 소설 ‘안드로메다 성운’ 위에 사은품 ‘갤럭시 펜던트’가 올려져 있다.

이미 인터넷 서점이 각종 사은품을 주는 상황에서 개별 출판사가 자체 사은품 마케팅에 나선 이유는, 인터넷 서점에서 '이벤트 대상'으로 분류됐을 때 얻을 수 있는 홍보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초판 한정 사은품을 붙이면 '이벤트 도서' 목록에 올라 홈페이지 노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사은품 마케팅 효과가 큰 인터넷 서점과 달리, 개별 출판사는 효과를 느끼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예스24는 "지난달 15일부터 진행한 '라인프렌즈' 사은품 이벤트(5만원어치 이상 구매 시 선착순) 결과, 평균적으로 한 번 구매 시 2.4권, 3만8000원어치를 사던 고객들이 이벤트 기간에는 4.5권, 7만7000원어치를 샀다"고 했다. 구매 권수와 액수가 평균 대비 2배 정도 늘어난 것. 반면 출판사가 신간에 사은품을 붙였다고 책 판매가 기대치보다 2배씩 뛰는 일은 흔치 않다는 게 출판계 이야기. 한 출판 관계자는 "남들 다 하니 우리도 뭔가 해야 한다는 분위기"라며 "실제로 사은품으로 재미를 본 책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마케팅에 집중하느라 정작 책 출판에 쏟는 노력을 소홀히 할까 우려하기도 한다.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는 "독자는 자기에게 필요한 책을 구입하지 사은품을 보고 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책이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사은품 등 마케팅 방안도 연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