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기업 서울지사에서 7년을 근무하고 귀임한 야마자키 히로유키(가명·46)씨는 도쿄에 돌아와서 본사가 있는 마루노우치 일대가 몰라보게 달라진 것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서울 발령이 나기 전인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십년 된 우중충한 건물이 즐비했던 이곳이 현대적인 고층빌딩 숲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마루노우치는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과 서울역을 합쳐놓은 듯한 공간이다. 국책연구소·금융기관·대기업 본사가 밀집해 있다. 일왕이 사는 궁전이 바로 앞이고, 국회와 총리관저도 지척이다. 포천 글로벌500에 드는 기업 중 19개가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큰 회사 작은 회사 합쳐 4300개 기업이 둥지를 틀고 28만명이 근무한다. 야마자키씨가 서울로 떠날 때만 해도 마루노우치는 '비즈니스 중심지'였지만 낡은 구도심이었다. 남북으로1.3㎞, 동서로 300~900m인 좁은 공간에 지은 지 수십년 된 건물로 빼곡했다. 은행과 관공서가 문닫고 나면 야근하는 샐러리맨을 빼곤 인적이 없었다.

일본 도쿄 도심의 고도 제한이 완화되기 전인 1992년 마루노우치 일대(왼쪽)에는 도쿄역 철로 너머로 높이 31m 제한을 맞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도심 고도 제한이 완화된 2016년에는 초고층 빌딩이 밀집해 있다.

[일본 도쿄는 어디?]

이젠 달라졌다. 고도성장기에 지은 오래된 건물들을 최신형 초고층 인텔리전스 빌딩으로 개축하거나 신축하면서 스카이라인이 달라졌다.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가게도 속속 입주했다. 식도락가들이 '버터계의 에르메스'라고 부르는 에쉬레 메종드뵈르 도쿄점이 대표적이다. 중심가인 나카도리(仲通り)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평일은 오후 3시, 주말은 오후 5시까지 차가 안 다녀 빌딩숲 복판인데도 봄여름이면 노천카페가 북적거린다. 2027년에는 인근 도쿄역 뒤에 높이 390m짜리 빌딩도 들어선다.

마루노우치 재개발은 1988년 이 지역 건물주들이 '오테마치·마루노우치·유락쵸 지구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 협의회'라는 공동 운영기구를 만들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미쓰비시 계열사 중 하나로 이 지역 부동산 약 30%를 보유한 미쓰비시지쇼(三菱地所)를 중심으로 기업·단체 89곳이 참여했다. 지역 전체를 어떻게 살릴지 전문가와 관청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7년 동안 큰 그림을 그린 다음, 1995년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3년 뒤 첫삽을 떴다. 긴죠 아쓰히코(金城敦彦) 미쓰비시지쇼 개발추진부 부(副)부장은 "사람들의 교류 기회를 늘리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고 했다. 중심가에 차가 못 다니게 하고, 지하 상가와 지상1~2층에 맛집과 노천카페를 적극 유치하자는 전략이 여기서 나왔다.

1998~2007년까지 1단계 사업 기간 때 마루노우치 중심가 보도 폭을 6m에서 7m로 넓혔다. 지금 마루노우치에 서 있는 100여개 건물 중 미쓰비시UFJ신탁은행 본점·신마루노우치빌딩 등 6개를 이 기간에 새로 지었다. 2008년부터 시작된 2단계 사업 기간에는 오테마치와 유락쵸까지 이어지는 지하상가·지하철 연결망을 완성해나갔다. 마루노우치 에이라쿠빌딩·오테마치파이낸셜시티 같은 새로운 랜드마크가 속속 들어섰다.

정부는 필요할 때 관련 규제를 융통성 있게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고이즈미 정권 때 '어번 뉴딜'을 추진하면서 도심 곳곳에 특별지구를 설정해 고도제한(31m)을 해제한 게 대표적이다. 일본은 지진 때문에 도심 곳곳에 고도제한을 뒀는데, 방재기술·내진설계가 발달해 자신감을 갖게 된 덕이 컸다. 마루노우치도 그 혜택을 봤다.

중간에 정권이 바뀌어도 재개발 계획의 큰 틀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루노우치 재개발은 자민당 정권에 첫 삽을 뜨고 민주당 정권 때 계속 추진해 아베 정권 때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30년 가까운 불황과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민관이 협력해 꾸준히 개발을 밀고 나간 것이다.

이세 나오히토(伊勢尙史) 국토교통성 도시국 기획조정관이 "중간에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도시 재생의 중요성에 대해서만큼은 정부의 입장이 바뀐 적이 없다"면서 "다국적 기업 아시아 본사를 도쿄로 유치하는 게 정부의 당면 목표"라고 했다. 다마키 다다시(玉置直司)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만약 한국이었다면 '재벌 특혜' 논란이나 불황 등의 요인으로 중도에 좌절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