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에무라 '강남 핑크' 대히트로 핑크 립스틱 전성시대
립스틱계의 3대 천왕 나스, 맥, 슈에무라의 핑크 단연 돋보여
톰포드 립스틱 6만원대 고가, 패셔너블하지만 가성비는 떨어져
1~6만원대, 기본 발색은 비슷해보이나 지속력은 차이

스무살쯤 친구들 앞에서 한참 부끄러워진 적이 있다. 아직 사복을 어떻게 입어야하는지 모르던 시절, 핑크색 스커트에 핑크색 가디건을 두르고 핑크색 구두를 신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너 공주병 걸렸냐”는 친구들 반응에 깨달았다. 핑크색을 입는건 사회적 스테레오 타입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는 걸.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엘 우즈(리즈 위더스푼)처럼 온 몸을 핑크색으로 무장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싶지만, 몇해 전 구입한 핑크색 원피스 하나 입을 엄두가 안나 옷장 속에 꽁꽁 숨겨두었다.

이후 나의 옷장은 검정, 회색, 곤색, 갈색 등 우중충한 무채색으로 뒤덮였지만, 옷을 제외한 소품을 고를 땐 여전히 핑크색을 고집한다. 노트북 마우스와 핸드폰 케이스는 핑크색 헬로키티 제품이고, 어렵게 구한 핑크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조금이라도 색이 바랠까봐 아껴 사용한다. 밖에선 드러나지 않는 이불커버와 인테리어 소품 역시 늘 핑크색이다.

이런저런 작은 소품은 늘 핑크색을 고집해도, 여전히 사회적 시선(?) 때문에 내 몸에 핑크색 아이템을 장착하고 출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핑크 립스틱은 유일하게, 튀지 않고, ‘공주병 의혹’을 받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내 몸에 지닐수 있는 핑크색 패션소품이 아닐까 싶다.

나의 핑크 사랑은 립스틱 과다구매에 이르게 했다. 기분 전환으로 좋아 오다가다 사다보니 핑크색 립스틱만 50개가 넘는다. 이에 올 봄 핑크색 립스틱 구매를 앞둔 독자를 위해 예전에 유행했던 전지현의 입생로랑 틴트부터 고준희의 슈에무라 강남핑크 립스틱까지 직접 발라보고 비교했다. 일부 제품은 기자가 직접 사서 몇년째 사용중이기도 하다. 체험담을 공개하기에 앞서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임을 밝혀둔다.

◆ 고준희의 슈에무라 ‘강남핑크’ 세련된 핑크 립스틱

슈에무라(Shu Uemura)는 몇년전만해도 오일클렌저 외에 딱히 떠오르는게 없던 브랜드인데, 이제 핑크색 립스틱을 논할때 빼놓을 수 없게 됐다. 여배우 고준희를 모델로한 ‘강남 핑크’가 대박을 치면서 부터다.

슈에무라의 ‘강남 핑크’를 바른 배우 고준희

강남 핑크의 원래 이름은 ‘루즈 언리미티드 슈프림 마뜨 PK376’이다. 하지만 매장에서 ‘강남 핑크’를 보여달라고 말해도 된다. 이 제품은 매트 라인으로 나왔지만, 뻑뻑하지 않고 부드럽게 발리면서도 보송하게 마무리되는 특징이 있다. 건조한 입술을 가졌지만, 각질이 부각되지 않는 점도 신기했다. 가격은 3만5천원. 백화점 브랜드 제품답게 제법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다. 배우 고준희처럼 세련된 느낌이 다분한 제품이다.

◆ 색조 브랜드의 지존, 나스 신제품 ‘벨벳 립 글라이드’부터 스테디셀러 ‘스키압’까지

색조 화장품 중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는 나스(NARS)다. 각진 무광 검정 케이스에서 뿜어져나오는 무심함과 시크함은 단연 최고다. 립스틱을 바를 때마다 측면에 ‘나스’라고 쓰여진 각인이 지워질까 초조해하며 아껴 바르게 된다. 3만원 중후반대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나스의 립스틱만 20개쯤 보유하고 있다.

지난 10월 신제품 런칭 행사에서 봤던 ‘벨벳 립 글라이드’의 몇 가지 핑크색을 체험하기 위해 매장에 들렸다. 여느 나스 제품이 그렇듯 발색과 지속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매장 직원의 설명대로 “립글로스 같지만 립스틱처럼 선명했다”. 마치 립스틱을 녹인 뒤 수분을 증발시켜 꾸덕하게 만든 액체를 바르는 것 같은 느낌이 인상적이다. 촉감, 제형, 색감 모두 흠잡을데는 없다. 오후 1시쯤 이 제품은 바르고 저녁까지 화장을 한번도 수정하지 않았는데, 그대로였다.

하지만, 막상 3만7천원이나 주고 사고 싶지 않았다. 나스라면 묻고따지고 않고 사들이는 ‘나스 덕후’지만, 4년전에 구입한 조지오 아르마니의 ‘립 마에스트로’보다 조금 더 광택이 날 뿐, 큰 차이는 안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스의 ‘스키압’ 제품을 바른 배우 소이현

나스 제품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윤은혜 립스틱’ ‘소이현 립스틱’으로 알려졌던 ‘스키압’이다. 이미 유행한지 꽤 지나, 이제는 한물간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다시 발라봐도 여전히 쨍한 색감은 매력적이다. 핑크색 원피스 하나 앞에서도 한참을 고민하는 소심한 성격이지만, 스키압은 의외로 발색이 부담스럽지 않다. 눈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더라도, 입술만으로 포인트를 주고 싶을 때 제격이고, 얼굴이 더 화사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 제품 역시 3만7천원으로 제법 비싼 편이지만, 3년째 잘 사용하고 있어 본전을 제대로 뽑을 수 있다.

나스의 ‘로만홀리데이’를 바른 배우 최지우

나스의 ‘로만홀리데이’도 추천한다. 자칫 두껍게 문지르면 ‘달려라 하니’의 고은애가 될 수도 있지만, 적당히 한겹정도 바르면, 여리여리한 핑크색을 표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제품은 립스틱 제형보다는 ‘메트 립펜슬’을 추천한다. 매트한 흰색이 석인 핑크색이라, 가볍게 색감만 표현하기 편리하다. 이 제품은 3만6천원이다.

나스에서 너무 많은 제품을 소개하는 것 같지만, 그만큼 빼놓기 어려운 좋은 립스틱이 많기 때문이다.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악역 연민정(배우 이유리)이 발라 유명해진 ‘나탈리’도 화사한 느낌을 준다. 얼굴에 형광등이 켜졌다 표현이 무슨 말인지 이 립스틱을 발라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 ‘문채원 립스틱’으로 불리는 맥의 ‘러브론’, 데일리 립스틱으로 추천

나스와 함께 색조계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맥(MAC)에서도 좋은 아이템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맥 제품 중 가장 잘샀다싶은 건 2년째 애정하는 ‘러브론’이다. 배우 ‘문채원 립스틱’으로 잘 알려진 이 제품은 튀지 않는 핑크 립스틱을 찾는 사람들에게 딱이다. 발색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자리에서도 무난하게 바르기 좋다. 화면 속 문채원처럼 화장을 한듯 안한듯한 느낌이다. 백화점 매장에서는 2만8천원인데, 종종 소셜커머스에 1만원 후반선에서 팔기도 하니, 온라인 구매를 추천한다.

맥의 ‘러브론’을 바른 배우 문채원

맥 립스틱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던 ‘캔디얌얌’은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슷한 색상인 나스의 ‘스키압’보다 보라빛이 강해서, 얼굴색이 어두워보이는 느낌이 들었고, 보라색이 도는 핑크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예전에 이효리가 발라 유명해졌던 ‘핑크 누보’ 역시 바르니 입술만 동동 떠보였다. 각질이 많은 건조한 입술을 가진 독자라면, 이 두 제품은 절대 추천하지 않겠다.

맥 브랜드에서는 핑크 립스틱 보다는 ‘루비우’ ‘레이디 데인저’ ‘칠리’ ‘드래곤걸’ 등 레드계열의 립스틱이 발색면에서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메이크업에 관심이 있다면, 립스틱계의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는 맥 ‘루비우’ 하나쯤은 꼭 소장하길 바란다.

◆ 톰포드, 6만원의 국내 최고가 립스틱…케이스 디자인에 못미치는 성능

괜찮은 핑크색 립스틱을 찾아 백화점을 헤매던 중 톰포드 매장에서 립스틱 가격에 깜짝 놀랐다. 무려 6만원. 다른 브랜드 립스틱에 두배나 되는 가격이었다. 비싼만큼 얼마나 대단한 제품일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체험해봤다.

톰포드의 립컬러 22 포비든 핑크

케이스는 가장 고급스러웠다. 블랙과 골드가 조화를 이룬 각진 립스틱 케이스는 그립감마저 훌륭했다. 립스틱 상단에 ‘TF’라고 써진 각인조차 아름다웠다. 다만, 립스틱의 발색, 제형, 지속감 등 기능면에서는 특별할게 없었다. 특별히 나쁜 점은 없었지만, 딱히 인상적인 구석도 없었다. 6만원이라는 가격이 아쉬울 뿐이다. 굳이 내 돈을 주고 살 것 같진 않다.

◆ 저렴한 가격에 편하게 바르게 좋은 에뛰드하우스 립스틱

요즘 로드샵에 립스틱도 쓸만한 제품이 많다. 그중에서도 에뛰드하우스의 ‘디어 마이 블루밍 립스’의 발색력이 좋다고 해서 매장을 찾았다. 역시 가격이 저렴했다. 립스틱 하나에 1만2000원선이였고, 매달 할인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8000원에도 구매할 수 있다.

아이돌 크리스탈이 모델인 에뛰드 하우스의 ‘디어마이위시립’ 화보

글로시한 제형에서부터 매트한 제품까지 다양하게 체험해봤다. 립스틱의 발색은 백화점 브랜드 못지 않았다. 쨍한 컬러감에서부터 여리여리한 핑크까지 다양한 색상이 발라봤는데, 대부분 기대 이상이었다. 가장 큰 장점은 아무리 신나게 골라 담아도 5만원이 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다만, 지속력은 떨어졌다. 식사를 하고 나면 립스틱의 절반 가량은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1시간 마다 수시로 거울을 보며 수정 화장을 해야 했다. 다소 번거롭지만, 저렴한 가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 수고쯤은 괜찮을 듯하다.

체험기를 마치며 나에게 어울리는 핑크 립스틱을 찾고 싶다면, 여러 브랜드의 화장품 매장을 찾아 틈날 때마다 발라보기를 권한다. 매장의 조명 아래에서는 예뻐 보이던 립스틱이 야외 자연광으로 볼 때는 또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색감도 중요하지만 피부 타입에 따라 어울리는 제형도 따로 있다. 글로스부터 스틱, 펜슬까지, 본인의 입술 상태에 잘 맞는 제형을 정해놓고 브랜드마다 제품을 비교해 보면 좋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올 봄 '나만의 핑크 립스틱'을 만끽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