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지난 1일 리조트 숙박과 할인 상품을 미끼로 회원 1만여명으로부터 450억원을 가로챈 일당 37명을 적발해 2명을 구속하고 3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적발된 업체는 리조트 숙박과 골프여행 사업 등 토털 레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알려진 '올레그룹'이라는 회사다. 구속된 주범 최모(50)씨는 2009년부터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이 업체를 운영했다. 회원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별도의 법인을 만들어 '바지사장'으로 자신의 심복을 앉혔고, 그 법인 아래에는 영업사원 네댓 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영업 법인을 여러 개 만들었다. 경찰은 "직원은 50명 남짓했지만 만약을 대비해 '꼬리 자르기' 차원에서 여러 법인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법적으로는 최씨와 이 영업 법인들과 아무 관련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무료숙박권 이벤트 당첨됐어요"

회원 모집은 5~6명의 콜센터 여직원들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전국 아무에게나 무작위로 전화를 돌렸다. 통화가 이뤄지면 상대방과 함께 기뻐하는 목소리로 "무료 숙박권 특별 이벤트에 당첨됐다"면서 호텔이나 리조트 무료 숙박권을 주겠다고 했다. 상대가 관심을 보이면 회사 직원이 사무실이나 집까지 직접 방문해 숙박권을 전달해준다면서 약속을 잡았다.

그다음엔 이 회사 영업사원들이 나섰다. 농촌이든 도시든, 회원이 어느 곳에 있든지 즉각 출동했다. 회원 1명을 가입시킬 때마다 수당 90만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 명함에는 '올레○○' '현대레저○○' '동부○○○' '명성○○' 등의 대기업 계열사를 연상케 하는 영업법인 이름이 적혀 있었으나 대기업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피해자 상당수는 이들의 소속 기업이 KT나 현대그룹, 동부그룹 등과 관련 있는 곳인 줄 알았다.

영업사원들은 약속한 무료숙박권을 건네며 더욱 솔깃한 제안을 했다. 자신의 회사와 제휴를 맺고 있는 전국 유명 리조트를 20년간 반값에 사용할 수 있으며, 직접 운영하는 리조트도 1박당 청소비 2만~3만원 내고 묵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회원권이 1550만원짜리이지만 298만원만 내면 된다. 만일 하루도 이용하지 않았다면 1년 후 환불해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제안에 속아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작성한 사람이 많았고, 일부는 공짜 숙박권을 주러 먼 곳을 찾아온 영업사원에게 미안한 마음에 계약서에 사인했다. 피해자는 주로 30대 이상 남성이 많았다고 한다. 경찰은 "유명 콘도 회원권은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1년에 한두 번 근사한 곳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 했던 가장들과 노인들이 주로 회원으로 가입했다"면서 "여성들은 의심이 많아 영업사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고객은 회원 가입 전에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 확인을 해봤으나 게시판에는 회사 측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가짜 후기(後記)가 많았다고 수사팀은 전했다.

회비를 내고 나면 회원들은 찬밥 신세가 됐다. 이 회사는 속초와 제주 등에 88개의 리조트 객실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대부분 오래되고 낡은 시설이었다. 영업하다 망해 경매에 넘겨진 콘도 객실을 헐값인 2000만~3000만원에 사들인 것이었다. 이곳을 이용했던 회원들은 "갈 곳이 못된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회원들은 계약서에 적힌 대로 유명 콘도 할인 숙박을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가 예약 접수를 한 뒤 실제 방을 구해 준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접수가 너무 많이 밀렸다" "극성수기라 콘도 회원도 방을 못 구한다" 등의 각종 핑계를 댔다. 경찰 관계자는 "강력 반발하는 회원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할 것 같은 회원들에게만 마지못해 유명 콘도 객실을 잡아줬다"면서 "그것도 회원을 담당하는 영업사원이 자신의 돈을 보태 유명 콘도 방을 잡아놓고 회사가 할인해주는 것처럼 위장했다"고 말했다.

속이고 또 속여 피해자 속출

회원들의 불만이 누적되고 소비자원 등에 제보가 잇따르자 최씨 측은 두 번째 사기극을 벌였다. 기존 영업 법인을 모두 폐업시키고 또 다른 영업 법인들을 만들었다. 회원들에겐 "과거 회원권을 판매했던 회사는 부도가 나고 우리가 그 회사를 인수했다"면서 "기존 서비스를 승계받고 과거에 냈던 회비까지 환불받으려면 389만원의 추가 회비를 내야 한다"고 안내했다. 298만원짜리 회원권을 허공에 날릴 위기에 처한 상당수 회원이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더 냈다. 이 방식을 비판하는 회원들에게 회사는 자신들이 보유한 콘도를 평생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객실 지분을 공유해주겠다고 했다. 사실상 콘도 회원권을 보유하는 셈이니 많은 회원이 이 조건을 듣고 계약을 맺었다. 실제로 돈을 납부하면 회사 측에선 객실 지분을 확보했음을 알리는 법원의 등기 완료 통지서를 보내줬다. 그러나 회원들이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이 통지서엔 회원 1명 이름밖에 나오지 않지만, 이미 이 객실엔 지분 보유자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10여평짜리 객실 한 개를 수백명이 지분을 나눠 갖는 구조였다"면서 "어떤 객실은 소유권 등기를 떼어보니 지분 공유자만 500명이었다"고 했다. 회사 측이 경매로 3000만원 주고 산 콘도 객실을 수백명이 400만원씩 내고 나눠 가진 것이다.

사기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어리숙한 회원에겐 추가 회비를 내면 기존 콘도 지분에 골프 등 프리미엄 서비스를 얹은 회원권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주겠다고 속여 돈을 더 뜯어냈다. 이런 방식으로 모두 5차례 사기를 당한 회원이 있는 등 피해자 절반이 평균 두 번씩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최씨는 8년간 20여개의 영업 회사를 앞세워 사기성 영업을 해왔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처벌을 받았다. 2013년에도 일부 피해자들이 수사 기관을 찾아갔지만 최씨가 아니라 바지사장에 불과한 영업 회사 대표들을 고소했을 뿐이다. 당시 최씨는 참고인 조사만 받고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사기 금액은 초대형이지만 1인당 평균 피해 금액이 400만~500만원 정도여서 회사를 상대로 끝까지 싸우는 피해자가 드물 것이라는 점을 최씨 측이 악용했다"면서 "목소리 크거나 자신들의 사업에 위협이 될 만한 일부 회원에겐 환불을 해주는 등 회원들을 차등 관리해왔다"고 했다.

주범은 돈 잔치, 회사 잔고는 깡통

그렇다면 회원들이 낸 450억원은 어디로 갔을까. 경찰은 "현재 회사 통장은 깡통 상태"라며 "회원들의 가입비로 최씨와 그의 일가, 일부 영업 사원들이 돈 잔치를 벌였다"고 했다. 최씨의 친형과 친동생은 영업 법인을 운영했고, 최씨의 아내는 같은 사무실에 여행사를 만들어 매달 1000만원씩 챙겨갔으며, 최씨 처제는 예약실장으로 근무했고, 처남은 탈세를 위한 허위 카드 가맹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고졸 출신 20·30대가 대부분인 영업사원 중에서도 억대 연봉자가 수두룩했다. 경찰은 "한 달에 20명씩 회원을 모집하는 직원도 있었다"면서 "1억원 이상 고소득을 올린 영업사원 12명도 사기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형사 입건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매년 우수 영업사원을 뽑아 표창과 함께 현금 200만원과 '진짜' 해외 여행권을 시상했다고 한다.

원래 자동차 부품과 건강식품 등을 팔았던 최씨는 이 회사를 차린 후 막대한 현금이 들어오자 어엿한 레저 그룹 회장 행세를 하고 다녔다. 기사 딸린 수억원짜리 벤틀리를 타고 다니며 연예인과 체육인 등 유명인과의 교분을 넓혀갔다고 한다. 2014년엔 전국마라톤협회 명예회장을 맡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황영조씨 등을 초청한 마라톤 행사를 열었으며, 연예인 초청 골프 대회도 주최했다. 사회공헌 활동 명목으로 회사엔 스포츠봉사단을 만들기도 했다. 최씨와 친분이 있는 한 기업인은 "유명 인사를 끌어들여 자기 사업의 신뢰도를 높이려고 했던 것처럼 보였다"면서 "그의 회사 내부자로부터 사기 회원권을 판매한다는 얘기를 듣고 접촉을 끊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작년 7월 피해자 15명이 2억80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서울 광진경찰서에 고소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최씨는 이번에도 부하 직원인 영업법인 대표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으나, 직원들이 반발하고 계좌추적 결과 회원들의 회비가 최씨 측에게 대거 유입되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구속에 이르게 됐다. 최씨는 법원 구속영장 실질 심사에서 "나와 무관한 영업 회사에 리조트 이용권을 판매했을 뿐 회원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진서 강호남 경제1팀장은 "피해자와 피해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금융기관 협조와 최씨 주변 조사를 통해 회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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