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 최초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소장인 박한철(64·사법연수원 13기) 제5대 헌재 소장이 6년간의 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31일 퇴임했다.

박한철 제5대 헌법재판소 소장이 31일 퇴임식을 마치고 헌재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 소장은 평소에 “늦춰진 정의는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라며 정확하고 신속한 재판에 주력해 왔다. 특히 “관례대로 하지말라”, “다르게 생각하라” 등을 주문해 시대적 흐름에 맞는 헌재 결정을 내리도록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날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박 소장의 퇴임식에는 2~4대 헌재 소장이었던 김용준·윤영철·이강국 전 소장을 비롯해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 헌재 직원 등 200여명이 모였다.

박 소장은 “세계 정치와 경제 질서 격동 속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직무 정지 사태가 두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비춰볼 때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은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면서 “남은 분들에게 어려운 책무를 부득이 넘기고 떠나게 돼 마음이 무겁다”고 퇴임 소회를 밝혔다.

박 소장은 이어 "동료 재판관님들을 비롯한 여러 헌법재판소 구성원들이 각고의 노력을 다해 사건의 실체와 헌법·법률 위배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함으로써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인 헌법수호자 역할을 다해 줄 것을 믿는다"며 “이제 헌재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 헌재가 슬기로운 해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박한철(우측에서 여섯번째) 소장이 제 5대 헌재 재판관들과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이날 퇴임식에서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보였던 박 소장은 퇴임식 초반에 코타로 오시오의 황혼(Twilight) 등 장애우의 잔잔한 기타 연주가 진행되자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6년간의 헌재 발자취를 담은 동영상을 보는 중간중간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박 소장은 2011년 2월1일 헌재 재판관으로 임명된 후 2013년 4월12일 검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소장에 올랐다. 박 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의해 재판관으로 임명된 후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소장 임명을 받았다.

박 소장은 소장 재임 기간에 간통죄 위헌,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합헌, 사법시험 폐지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 합헌, 야간 시위 금지, 주민등록번호 변경 등 굵직한 결정들을 쏟아냈다. 박 소장은 밤낮없이 사건 기록을 검토하느라 취임 기간에 안경을 세번이나 바꿨다.

박 소장은 지난해 12월 9일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접수된 이후에도 주말과 휴일을 모두 반납하고 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탄핵 심판 심리를 진행하기 위해 설 연휴 직전까지 50여일 동안 매일 집무실에 출근했다. 박 소장은 변론 전 준비절차 3차례와 9번의 변론에 참석했지만, 결정문에는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헌재를 떠나게 됐다.

박한철 소장이 31일 헌법재판소로 마지막 출근을 하고 있다.

박 소장은 설 연휴 첫날인 27일부터는 퇴임사를 직접 쓰고 가다듬는 데 몰두하기도 했다. 박 소장은 퇴임사를 통해 “절망의 시기에도 헌재가 헌법・국민・역사 세가지 거울을 항상 가슴에 지니고 결코 부끄러움이 없는 곳이 되길 바란다"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박 소장의 퇴임으로 헌재는 8인 체제로 운영된다. 오는 3월 13일 임기 만료되는 이정미 재판권이 소장 권한대행을 맡는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기 전인 3월초까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