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1시 25분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연행되던 최순실이 돌연 기자단을 향해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고 소리를 쳤다. 돌아온 답은 "염병하네" "염병하네" "염병하네" 3연타였다. 물론 기자단 공식답변은 아니었고, 지나가던 한 청소부 아주머니가 던진 말씀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염병'이 욕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유래를 지닌 욕인지는 대부분 잘 모르는 듯하다. 이를 틈타 일부 친박 성향 커뮤니티 회원들은 "염병은 전라도 사투리에서 나온 욕설"이라며 특정 지역을 겨냥했다.

◇특정 지역에서만 쓰는 욕설 아닙니다

'염병'은 한자어다. 전염병(傳染病)에서 '전'자가 탈락한 단어다. 즉, 사투리가 아니다. '부산 사투리의 이해'(해성)를 쓴 이근열 전 부경대 국문학과 외래교수는 "'염병'은 전염병 중에서도 주로 '장티푸스'를 가리키는 말이다"며 "이 병들은 조선 팔도에 창궐했던 병이기 때문에, '염병'이라는 말도 한반도 전역에서 쓰였다"고 했다.

'염병'이 욕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정말 많이 아픈 병이기 때문이다. 염병에 걸리면 처음엔 온몸에서 기운이 빠지고 머리와 허리가 아파져 온다. 그러다 고열과 설사가 2~3주간 이어진다. 열과 탈수 증세 때문에 환자는 앓는 내내 몸을 바들바들 떤다.

'염병한다'는 욕은 여기서 나왔다. 옛사람들은 장티푸스 환자가 앓는 모습을 흉하다 생각해, 분별없이 법석을 떠는 모습을 '염병한다'고 일컬었던 것이다. 청소부 아주머니께서 보기에 최순실 모습이 이러했던 모양이다.

비슷한 말로 '지랄'이 있다. 흔히 '간질'이라 부르는 '뇌전증'을 순 우리말로 '지랄병'이라 하는데, 발병하면 환자가 몸을 뒤집고 거품을 물며 발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때문에 '지랄한다'는 '염병한다'와 유사하게 쓰였다.

◇보다 세게 욕할 수도 있었다

여담으로, 이보다 한층 더 독한 표현은 '염병할 놈'이다. 장티푸스가 워낙 아픈 병이다 보니, 앓는 중 탈모가 오는 경우도 많았다 한다. 게다가 모근이 상하며 빠지기 때문에 병이 나아도 머리카락이 거의 나지 않았다.

호르몬 아닌 이유로 몸이 시달리다 대머리에 이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화 '원펀맨' 주인공 사이타마는 팔굽혀펴기 100번, 윗몸일으키기 100번, 스쿼트 100번, 런닝 10㎞를 3년간 매일 반복하며 몸을 혹사하다 머리카락을 몽땅 잃었다. '염병할 놈'이라는 건, 이 정도로 몸고생해 보라는 저주를 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