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 철봉에 매달린 아이들. 레이첼 시먼스의 책 ‘소녀들의 심리학’은 어린 시절 괴롭힘을 당한 아이들의 삶을 추적한다. 윤가은 감독 영화 ‘우리들’은 세 소녀의 우정 속에 있는 불안·질투·두려움의 감정을 그려낸다.

여성학자 레이철 시먼스 책 '소녀들의 심리학'의 부제는 '그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고 왜 등을 돌리는가'이다. 이 책을 펼친 순간 나는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책인지 직감했다. 이 책은 언젠가의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반 아이들에게 선택되지 않을까 봐 가슴 졸이던 나, 피구를 하던 학교 운동장 한복판에서 내게 공이 날아올까 봐 두려웠던 기억, 좋아했던 친구와 알 수 없는 이유로 멀어졌던 경험들…. 유년의 어떤 기억들은 추억으로도 도무지 미화되지 않는다. 날것 그대로의 아이들은 천진한 얼굴로 잠자리 날개를 찢고, 메뚜기 다리를 뜯어낸다. 빗금을 만들어 무리 짓고 금 밖 아이들을 향해 함부로 말을 내뱉기도 한다. "야! 너 금 밟았어! 왜 안 나가냐! 넌 왜 맨날 거짓말만 해!"

'소녀들의 심리학'은 저자의 경험에 기반한 개인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에 다른 여자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이나 놀림을 당한 적이 있나요?" 그녀는 이 질문을 기초로 3년 동안 300명이 넘는 소녀와 교사, 부모와 여성들의 경험을 모았고, 그것이 현재의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했다. 전통적으로 소년들의 따돌림에 비해 소녀들의 따돌림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소년들의 따돌림이 주먹질·발길질 등의 신체적 폭력인 반면, 소녀들은 철저히 비신체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들은 뒤에서 흉보고 소문내고 거짓말하고 마음을 조종한다. 대상도 소년들과 달리 가까운 친구인 경우가 잦다. 무엇보다 따돌림의 피해자는 대개 침묵(말해봤자 소용없어. 날 아무도 못 도와줄 거야!)으로 저항하기 때문에, 고통 자체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일 역시 거의 없다. 드러나는 상처보다 훨씬 더 심각한 내상을 입히는데도 말이다.

윤가은 감독 영화 '우리들'을 봤을 때, 나는 '소녀들의 심리학'을 떠올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들' 쪽이 책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내겐 300여명의 진술보다 화면을 멍하게 응시했던 두 소녀의 눈빛이 더 많은 불안과 참담함을 환기시켰다. '우리들'은 끝내 소환되길 거부하는 무덤 속 기억을 기어이 불러내 우리에게 '아파! 너무 아파!'라는 말을 이끌어낸다.

피구 멤버를 정하는 아이들의 게임에서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선을 따돌리는 건 같은 반 친구 보라다. 예쁘고 공부 잘하는 보라는 선을 '선 밖'으로 밀어낸다. 금을 밟았는데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선을 '거짓말쟁이'로 호명하며 낙인찍는다. 집 안에서 선은 어린 동생 윤을 돌보는 의젓한 누나이고, 김밥집 하는 엄마의 착한 딸이지만 학교에선 왕따일 뿐이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막 시작되는 날 그런 선에게도 친구가 나타난다. 그 아이가 전학생 지아다.

한 번도 '우리'인 적 없던 소녀는 꿈결 같은 여름방학을 보낸다. 이때, 비밀 공유는 필수다. 선은 지아가 아빠와 함께 살며 영국에 있는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걸 알게 된다. 지아 역시 선이 가지고 싶은 휴대폰과 색연필을 못 가질 만큼 돈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둘 사이의 결핍은 오히려 우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는 순간, 지아는 선을 위해 문방구에서 색연필을 훔치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건 좀 아니잖아!"라고 말하면서도 선은 행복감을 느낀다. 선은 엄마를 졸라 일주일 동안 지아와 함께 지내며 그녀를 위해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팔찌를 만들어 낀다. 소녀들의 우정은 이처럼 달콤하고 격렬하다.

문제는 여름방학이 끝나면서부터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아가 선을 왕따시켰던 보라와 친해지며 돌변한 것이다.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지아를 보며 한껏 불길해진 선은 지아의 눈치만 살필 뿐이다. 소녀들의 우정은 불안·질투·두려움이라는 복잡한 감정들 속에 익사 직전까지 내몰린다. 더 큰 문제는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 없던 보라가 지아에게 1등을 뺏기는 순간 일어난다. 보라가 지아를 교묘하게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그녀가 사용하는 책략은 선 때와 마찬가지로 '거짓말'과 '구분 짓기'다. 의도치 않게 보라에게 지아의 비밀을 발설한 선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우리들'은 수많은 심리학 용어가 클로즈업된 아이들의 얼굴을 통해 묘사된다. 투사, 왜곡, 회피, 자기합리화…. 이 둘의 관계는 수없이 역전되고 뒤집히고 만신창이가 된다.

사랑하는 마음은 어째서 이토록 쉽게 증오로 변질될까. 선의 아빠는 병문안 한 번 가지 못한 채 자기 아버지를 밀어낸다. 선의 동생 윤은 놀기만 하면 자신을 공격해 상처 입히는 장난꾸러기 연호와 논다. 얼굴에 난 동생의 상처를 바라보다가 선은 묻는다. 연호가 때리는데 왜 그 애랑 노느냐고. 아이가 말간 얼굴로 대답한다. 계속 놀고 싶으니까.

윤가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쓰고 싶은 건 관계 속의 폭력을 사건 중심으로 푸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다. 더 중요한 건 사건 이후, 복잡한 감정들을 끌어안은 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이다. 나는 이 말에 동감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어떤 것도 '삶'보다 강한 건 없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지아와 선의 관계가 새 국면을 맞이하는 건 영화의 엔딩 장면이다. 피구 게임에서 다시 한 번 지아를 금 밖으로 밀어내려는 보라에게 선은 망설임 끝에 말한다. "야! 한지아 금 안 밟았어. 아니, 진짜 금 안 밟았어. 내가 다 봤어."

"소녀들이 서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긍정적인 어휘가 더 많이 생길 때 더 많은 소녀가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자신의 문제에 답하며 자신의 관계 미스터리를 해결할 것이다. 소녀들에게 자기의 진실을 말하고 또래의 진실을 존중하는 능력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소녀들의 감정 전부를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가 되면 그들도 솔직한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 왕따를 당해본 아이가 이 문장을 읽는다면 가슴을 치며 울먹일지 모르겠다. 자신이 겪었던 말 못 할 고통이 명확한 문장으로 표현되는 순간, 그것의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차라리 축복이라 믿고 싶다. 이토록 두려운 영화가 2016년 내가 본 그 어떤 영화보다 희망적으로 보였던 건 억눌렸던 선의 말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을 보기 위해 90분을 견뎠던 참담함이 그 순간, 소녀의 얼굴처럼 꽃으로 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들―윤가은 감독의 영화 / 소녀들의 심리학―레이철 시먼스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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