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상쾌한 '박쥐'라니...영화 '마스터'의 이중첩자 역할로 존재감 돋보여
'밀정'의 송강호, '아수라'의 정우성과는 '폼'이 다른 유쾌한 박쥐 캐릭터 호평
"500억 금융 사기? 나한테는 500만원도 큰 돈"
사우나에서 숙식하고 세 끼 밥 먹기도 버거웠던 스무살, 감사 일기 쓰며 마음 잡아
3년 전, 그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한강변이었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검은색 터틀넥에 꼭 끼는 가죽 바지, 워커를 신었고, 그 위에 진회색 전통 두루마기를 걸쳤다. 머리엔 원반 모양의 거대한 검은 모자를 쓴 채였다. 드라마 ‘상속자들'로 스타가 된 모델 출신 연기자 김우빈의 아방가르드한 패션 신(scene)이었다. 그때 나는 이 스물셋의 청년이 앞으로 더 큰 ‘물건'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을 뒤섞어 놓은 그 비범하고 실험적인 패션 촬영에서, 그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서늘하고도 비상했다. 예리한 날이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통제된 느낌, 여자로 치면 나탈리 포트먼이 ‘레옹'에 등장했을 때의 그런 기운이었다. 일종의 ‘야생의 순정(열정이라기보다)'이라고나 할까. 상대를 믿고 단번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충성심. 흙수저 든, 금수전 든, 우리는 그런 ‘꼼수가 없는' 청년에게 매혹되곤 한다.
김우빈을 만났다. 검은 터틀넥에 반짝이는 턱시도 재킷을 입은 장신의 청년이 폴더를 접듯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다. 인터뷰 시간을 잘못 알고, 순전히 내 실수로 늦었음에도 미안해하는 쪽은 그다. “차, 많이 막히죠? 저도 그랬어요. 오늘따라 더 힘드셨을 거예요.” 대한민국 도로가 막혀서 송구하다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의 얼굴엔 감출 수 없는 기쁨의 광채가 일었다.
성탄 즈음이긴 했지만, ‘기쁨과 감사’라는 성경의 단어를 의인화하면 저런 표정이 되겠구나, 싶었다.
김우빈은 보수적인 도시 전주에서 1남 1녀의 첫째로 태어났다. 김우빈의 어머니는 논술 교사였고, 아들에게 직접 만든 옷을 만들어 주는 등 그가 패션에 관심을 가지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부모님의 취미를 이어받아 어릴 때부터 서예와 그림을 그렸다. 신사임당과 율곡 모자의 스토리가 아니다. 붓을 쥐고 반듯한 글씨를 써내려가던 소년은 몸으로 시를 쓰는 ‘패션모델'이 되겠다는 당돌한 꿈을 꾸었다.
“네가 무슨 모델이냐?”고 비웃었다던 중학교 담임 선생과 달리, 김우빈의 부모는 키만 컸지 소심한 장남의 꿈을 지지했다. 아들에게 내건 조건은 하나였다. “책과 영화를 가까이하고 건강을 지킬 것만 약속해다오.” 그는 대경대학교 모델학과에 진학했고, 상경해서 모델의 꿈을 이뤘으며, 지금은 대한민국의 캐스팅 1순위 남자 배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외모만 두고 볼 때 김우빈은 남성적인 ‘누아르 영화'에 어울리는 제법 큰 얼굴 사이즈를 지녔다(스크린 연기에서 표현의 크기는 두상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나의 이론에 근거해서). 희대의 다단계 사기꾼 조희팔 사건을 소재로 한 개봉 영화 ‘마스터'에서 그는 글로벌하게 사기 행각을 벌이는 이병헌과 정의로운 수사관 강동원 사이에서 ‘왔다 갔다'하는 박쥐형 인간 ‘박장군'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가 미간에 힘을 줄 때 생기는 내 천자 주름과 포마드 올백 헤어, 몸에 꼭 맞는 슈트를 볼 때 이 청년의 미래는 장밋빛이다. 김우빈은 이병헌보다 크고 긴 얼굴, 동시에 강동원보다 길쭉한 팔다리를 타고났다. 그가 이병헌과 강동원보다 작은 것은 손뿐이다. 그리고 그 희고 작은 손으로 리드미컬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금융 사기의 숫자를 ‘조 단위'로 키워갈 때, 언젠가는 김우빈이 돈과 마약에 취해 테스토스테론을 흩뿌리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금융 사기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만큼의 위력적인 인물이 될 거라는 환각에 빠진다.
하지만 실제 영화 속에서 김우빈이 빠진 것은 이병헌과 강동원이 동시에 파놓은 덫이었다. 그는 금융 사기 조직의 전산 프로그래머이자 행동 대장으로 활약하다, 수사관 강동원에게 꼬리를 잡혀 경찰의 ‘프락치'가 된다. 영화 초반부터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박쥐' 신세로 전락하지만, 그 모양새가 ‘밀정'의 송강호와 ‘아수라'의 정우성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햄릿’은 아니다.
오히려 스펙터클하게 여러 사람과 ‘썸'을 타는 카사노바에 가깝다. 김우빈은 일종의 리듬 있는 스타카토 역할로 극의 활기를 주도한다. 천재적 해커답게 그가 두드리는 컴퓨터 자판 소리는 총소리보다 파워풀하다.
-‘밀정'의 송강호, ‘아수라'의 정우성에 이어 ‘마스터’의 김우빈까지… 바야흐로 박쥐의 시대입니다(웃음). 살기 위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이중 플레이'를 하다 진창에 빠지는 전작의 선배들에 비해 김우빈의 ‘박쥐'는 상쾌하더군요. 자기만의 박쥐 철학이 있습니까?
“저는 제가 맡은 박쥐 ‘박장군' 캐릭터를 아주 좋아했어요(웃음). 능청스러운 뺀질이인 데다가 천재적인 프로그래머죠. 만약 이병헌 선배가 맡은 전설의 사기꾼이나 강동원 선배의 엘리트 경찰 역이 제게 들어온다고 해도, 저는 ‘박장군' 역을 고수했을 거예요. 너무 기분이 좋았고, 이보다 더 잘할 자신이 없거든요(웃음).”
-맞습니다. 영화 속에서 관객이 유일하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박장군'이더군요. 쿨하게 사기 치고, 이쪽저쪽 오가며 뺀질대다가 결국 자기가 한 일의 파장을 알고 개과천선하는 인물. 금융사기를 당한 서민들이 나중에 예기치 않은 돈을 입금받고 기뻐할 때는 마치 산타클로스가 된 것 같았겠어요.
“하하. 매력적인 천재인 건 분명해요. 평소엔 어리숙하지만 자기 분야를 파고들면 빛이 나는 친구예요. 저는 뭐… 진짜 해커처럼 손가락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단계 사기로 4조 원의 피해를 내고서도 경찰 수사망에서 도망간 조희팔 사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나요?
“몰랐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크게 다뤘다고만 들었어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놀랐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가급적 만나고 싶지 않아요(웃음).”
-피해 금액의 크기가 몇천만 원에서 조 단위로 불어난 건, 영화에서 당신이 개발한 금융 프로그램 때문이죠. 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아마 ‘박장군'도 자기가 원했던 금액인 500억이 얼마나 큰 돈인 줄 몰랐을 거예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판이 커지고 컴퓨터상에서 몇천 억 몇조로 돈이 불어나면서, 오히려 500억이 소박하게 느껴졌겠죠. 지금 저에겐 500억이 아니라 5백만 원도 큰돈입니다(웃음).”
-큰돈을 벌면 하고 싶은 일이 있었나요?
“저는 그냥 세끼 밥을 양껏 먹고 싶었어요.”
-데뷔 시절 얘기인가요?
“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나에게 첫 끼를 사줄 사람을 찾는 게 큰일이었죠. 모델로 꽤 열심히 활동했는데도 페이가 잘 입금이 되지 않았어요. 어쩌다 돈을 받으면 삼각 김밥 사 먹기도 여의치 않아서 싼 분식집에서 라면을 사 먹고는 했어요. 그때 꿈은 그저 밥을 좀 양껏 먹을 수 있었으면, 두 다리 뻗고 누울 집이 있었으면 이었어요.”
-몇 살 때죠?
“스무 살 때요. 모델 일 같이 하는 친구와 둘이서 사우나에서 지냈어요. 찜질방은 비싸서 못 갔고, 하룻밤에 6천 원 짜리 사우나에서 숙박을 해결했지요(웃음). 건물 옥상의 2평짜리 컨테이너에서도 지냈고. 그때 친구와 했던 말이 “서울에 이렇게 집이 많은데, 키 큰 우리가 편히 쉴 공간이 없구나!” 였어요.”
-영화 속 캐릭터 ‘박장군'이 추락했을 때의 상황과 비슷하군요.
“실제로 휴대폰도 끊기고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이 안 될 때는 갑갑했지만, 그래도 암담하진 않았어요. 저는 부모님께 긍정적인 기질을 물려받았어요(웃음).”
김우빈은 나중에 반지하방을 처음으로 갖게 됐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고 했다.
-당시에 주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혼자 문답을 하곤 했어요. “이래도 계속해야겠어?” “응.” “돈 못 벌어도 좋아?” “응.” ‘정 안되면 전주에 ‘부모님 찬스’를 쓰면 돼. 하지만 스스로 하고 싶어. 되든 안 되든 내가 나한테 ‘열심히 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 어설프게 90을 하고 100을 했다고 자기방어를 하고 싶진 않아…’ 그런 생각들을 했어요.”
-왜 그렇게 모델이 되고 싶었나요?
“일단 키가 컸고요(웃음).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남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어요. 어머니가 멋쟁이셨는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윗사람의 조언에 대한 피드백이 빠르다고 들었어요. 모델 지망생 시절에 스승이 살을 좀 찌우라고 하면 하루에 달걀 한 판씩 먹고, 치아 교정을 하라고 하면 그날로 이빨 4개를 빼고 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더군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를 이끌어주시는 분의 말을 굳게 믿고 따르는 거죠.”
-영화를 함께 찍은 조의석 감독은 청년 김우빈에게 어떤 존재였나요?
“저를 믿어주셨어요. “잘할 거잖아.”라는 말로. 길을 벗어나면 또 바로잡아주셨습니다.”
-성실성과 더불어 깍듯이 예의를 다하는 당신의 성품이 기회를 확장한 것도 같습니다. 가정 교육의 덕이겠지요?
“네. 감히 말하건대, 저는 저의 부모님을 정말 좋아하고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 덕분에 먼저 사람에게 다가갈 줄 알게 됐고,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게 됐어요.”
-대학 시절 은사에게 손으로 직접 쓴 감사 편지가 인터넷에 떠 있더군요. 감사 편지는 아직도 쓰고 있나요?
“지금은 저 자신에게 쓰고 있어요.”
-유익합니까?
“정말 유익해요. 쓰면서 기분이 좋아지죠. 쓸 게 없을 때는 ‘하루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하루 세끼를 다 챙겨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감사함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도 써요. (핸드폰의 순간 일기 무료 앱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이 앱을 제일 많이 쓰는 앱에 넣어두면 좋습니다.”
-감사가 아닌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도 있을 텐데요.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금방 잊어버려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긍정의 힘' 덕분이죠.”
-바라던 일을 하고 나니 기분이 어떤가요?
“점점 더 즐거워집니다. 감사한 일도 많아지죠. ‘함부로 애틋하게'라는 드라마로 시한부 인생을 연기한 이후로는,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감사함도 커졌어요. 기분 좋은 떨림이 늘 함께합니다.”
-배우가 된 건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수많은 사람과 어울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내는 그 일 자체가 운명 같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완성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힘을 합치고 고민하고…(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게 운명이 아니면 뭐겠어요?”
-예전에 사우나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모델 친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습니까?
“장미관이라는 이름의 친구인데요, 그 친구도 배우가 돼서 이보영 씨와 드라마를 찍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지금 어딘가에서 실의에 빠져있을지도 모를 우리 시대의 ‘흙수저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분들의 상황을 알지 못해서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는 없어요. 다만 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지치지 말고 뛰어봤으면 좋겠어요. 기회는 조금 늦더라도 꼭 올 겁니다. 고깝게 생각하지 않고 제 말을 들어주는 친구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해요. "나는 너희보다 뛰어나서, 열정이 더 많아서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단지 운이 좀 더 빨리 왔을 뿐이야."
그런데 기회가 늦게 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기회를 맞으면, 내가 갖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워지거든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그 때까지 부디 '지치지 말아라.' 그거 하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