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에 종사하는 골드미스 김지은(가명·38)씨는 트렌드 레이더다. 서울 청담동 카페나 레스토랑은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다니고, 한남동·성수동·망원동 등 요즘 '뜬다'는 지역엔 반드시 출몰해 인증샷을 남긴다. 최근엔 호텔에 꽂혔다. 약속 스케줄표에 온갖 호텔 이름이 가득하다. 호텔 관련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휴가철도 아닌데, 그녀는 지난 주말에도, 지지난 주말에도 호텔을 찾았다. 호텔이 대세라서다. '감각 좀 있다'는 이들은 호텔에서 모인다. 독특한 건축 디자인이나 인테리어는 기본.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루프탑(roof top·옥상) 바(bar)에 '가성비' 좋은 레스토랑까지, 즐길 게 천지다. 소규모 개성 넘치는 스타일에 '부티크 호텔'이라 불리더니, 요즘엔 업그레이드된 생활을 맛본다는 의미의 '라이프스타일 호텔'로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 이미 미국 에이스 호텔이나 뉴욕 호텔 아메리카노, 스탠더드 호텔을 비롯해 영국의 전설적인 산업 디자이너 테레스 콘란의 바운더리 호텔 등은 '트렌디한 사람들의 아지트'가 된 지 오래다.
전·현직 호텔리어와 호텔 행사를 많이 치러본 명품 브랜드 담당자들이 서울 시내 최고의 부티크 호텔들을 추천했다. 호텔&레스토랑 예약 앱 데일리호텔의 '호텔 예약 건수' 등을 통계로 가볼 만한 부티크·라이프스타일 호텔 '탑 5'를 골랐다.
"애견과 함께"… 호텔 카푸치노
호텔리어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건 국내 첫 '라이프스타일 호텔'을 표방하며 지난해 서울 신논현역에 문을 연 호텔 카푸치노다. 첫 느낌은 뉴욕이나 런던 에이스 호텔에 와 있는 듯한 기분. 에이스 호텔이 로컬 카페를 들여놓고, 모든 여행객이 자유롭게 도서관이나 카페처럼 이용할 수 있게 개방하고 밤에는 지역 맥주나 와인 등을 팔면서 마치 라운지 클럽처럼 모르는 사람도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는 분위기로 꾸민 것과 비슷했다. 카페 앞에는 여럿이 모여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는 대형 테이블이 있고 칵테일 같은 술도 곁들일 수 있다.
로비 오른쪽엔 재활용 제품을 이용한 업사이클링 브랜드와 애견용품 숍이 눈에 띈다. 대형 트리는 객실 실내화를 재활용해 만들었고, 헌 옷을 모으는 대형 수거함이 자리했다. 자선단체 '옷캔(OTCAN)'과 협력해 기부한다. 141개 객실 중 6개는 반려견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바크 룸. 히노키로 만든 애완견 욕조, 자작나무 집, 순면 잠옷 등이 준비돼 있다. 반려견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얻어진 수익금 중 일부는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를 통해 유기견을 돕는 데 쓴다. 이소정 총지배인은 "요즘 손님들은 '의식적으로 깨어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단순한 숙박시설이라기보다는 공유 가치를 창출하고 기부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용객들은 음식에 높은 점수를 줬다. 캐주얼 레스토랑 핫이슈(Hot EATsue)에선 현재 미슐랭 2스타인 '곳간'의 이종국 셰프와 협업해 2만~3만원대의 '집밥' 음식을 선보인다. 삼겹살, 콩나물, 꽁치 같은 단품이지만 8년 숙성 진석화젓, 집에서 직접 담근 마늘 초 오일, 이종국 셰프 표 약고추장 등을 사용해 화제다. 16층 루프탑 바는 세계 유명 진토닉을 한데 모은 진토네리아(Gintoneria·진토닉 전문 바)가 들어섰다. 멀리 남산타워까지 보이는 야경을 즐기며 마시는 진의 상큼함이라니! 카푸치노 호텔 성공 이후 국내엔 롯데 L7, 이비스스타일앰배서더 호텔 등의 라이프스타일 호텔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에르메스의 품격… 호텔 28
포시즌스 호텔 윤소윤 홍보·마케팅팀장은 "영사기나 슬레이트 옛날 필름 등이 곳곳에 있고 영화에서 영감 받은 재미난 소품 하나하나에 예술적인 감각이 흐른다"며 호텔 28을 추천했다. 명동역 안쪽으로 위치해 지리적으로 편하면서도 번잡하지 않다. 호텔 28은 세계적인 럭셔리 독립 호텔 연합인 SLH(Small Luxury Hotels of the World)에 국내 처음으로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됐다. 지난 7월 영화배우 신영균 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이 문을 열었으며 건물명 '28'은 신 명예회장이 태어난 해(1928년)에서 따왔다.
1층 입구부터 6층 로비까지 영화 소품이 마치 옛날 극장 구석구석을 보는 듯했다. 예전 영화 티켓을 본뜬 키카드 등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3층 갤러리도 있는데, 투숙객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현재는 오관진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고 독립영화관으로도 이용될 계획이다. 80여 개 객실의 미니바가 무료. 맥주와 음료수,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 많은 초코파이 등 다양하다.
최고급 객실인 '디렉터스 스위트 룸'(주중 기준 1박 88만원)은 에르메스의 인테리어 담당자가 직접 와서 디자인을 꼼꼼하게 챙겼다는 후문. 신영균 명예회장이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에 에르메스 측이 헌정한 '디렉터스 체어'를 비롯해, 에르메스 명품 가구들이 구비돼 있다. YG엔터테인먼트와의 협업으로 '쓰리버즈 트라토리아' 레스토랑도 운영한다. 김종우 총지배인은 "과거 문화의 중심지였던 명동의 역사를 기념하며 한류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 파티?… 글래드 라이브 강남
호텔 카푸치노에서 멀지 않다. 문인영 파크 하얏트 홍보팀장은 "1~3층을 카페, 레스토랑, 라운지 바 등의 낮과 밤의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꾸며 4층에 로비를 둔 것이 참 영리해 보인다"며 "객실에 세계적인 오디오 명가 '하만카돈'의 블루투스 스피커와 짙은 회색의 목욕 가운과 소파가 놓여 있어 포인트 아이템으로 눈에 띈다"고 말했다. 매일 오후 9시가 되면 호텔 1층부터 3층이 통째로 라운지 바로 변신한다. 1~3층이 계단으로 연결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3층에 위치한 디 브릿지 컬러 애비뉴 바(bar)가 압권이다. 전체가 핑크색을 중심으로 보랏빛으로 포인트를 줘 '인스타그램 성지'로 꼽힌다. 내부에 있는 부처님 조각상은 무릎에 명품 지갑을 올려놓았다. 뉴욕의 부다바에서 본 불상과 비슷하다. 50개국 260여 개 호텔이 가입돼 있는 디자인호텔스의 멤버이기도 하다.
작지만 강하다… 신라스테이, 핸드픽트
호텔 신라가 선보인 신라스테이는 비즈니스호텔이지만 그 이름값으로 언니들 지갑을 열게 한다. '밥'이 맛있는 곳으로 이름나 있다. 상도동 명물이 된 핸드픽트 호텔은 신진 아티스트의 작품 전시장이자 직접 키운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 '나루'로 입소문이 났다. 숙박비의 5%를 상도동 지역 사회 프로젝트에 환원한다. 이 밖에 종로구 익선동에 문을 연 메이커스 호텔도 우아하다. 1800년대 빈티지 가구가 눈길을 끄는데, 민간 구호단체인 써빙 프렌즈에 수익금 일부를 기부한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소월길 키이츠 호텔, 독특한 색감과 디자인으로 화제가 됐던 인천의 네스트 호텔, 그 외에 강릉의 씨마크 호텔, 제주의 히든클리프 호텔도 추천 명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