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미르'는 순 우리말이다. 용(龍)을 의미한다. 고대 우리말에 '미'는 물(水)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미르, 미나리, 미역, 미꾸라지가 모두 물과 관련 있다. 일본말에서 '미즈'는 물을 뜻한다. 여기에서도 역시 '미'가 들어간다. 고대 우리말이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암시한다. 미르재단은 '용의 재단'이라는 뜻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1952년 임진생(壬辰生)이다. 용띠에 해당하니까 최순실이 재단 이름을 '미르'라고 지었던 것 같다.

고대사회에서 미르(용)는 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으로 숭배되었다. 가뭄이 들면 곡식이 말라 비틀어져서 흉년이 든다. 흉년 드는 것을 해결해 주는 신이 바로 미르였다. 동양의 고대 농경사회에서 흉년의 아사(餓死)를 해결하려면 비가 와야 하고, 그 비를 내리게 해주는 파워를 지닌 신이 바로 미르였던 것이다. 신령함을 뜻하는 영(靈) 자도 뜯어보면 맨 위에 비(雨)가 있다. 가뭄 끝에 고대하던 비가 오는 게 가장 신령한 일이었다. 고대에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가뭄이었다. 미르는 물에서 살았다. 강과 폭포, 호수에는 미르가 산다고 믿었다. 우리말 지명 '미리내'는 미르가 사는 내(川)이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긴 말이다.

미르의 상극은 개다. 진(辰)과 술(戌)은 상충(相沖) 관계이다. 기우제를 지낼 때 강이나 호수에 개의 머리를 집어넣었던 풍습이 있었다. 미르가 개를 싫어하니까 성질이 나서 비를 내리게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미르는 미륵으로 전환되었다고 본다. 발음도 비슷하다. 농경사회에서 수신인 미르를 믿다가 불교의 미륵불로 바뀐 것이다. 농사용 호수(湖水)가 많았던 호서(湖西)와 호남(湖南)에는 미륵 신앙이 성행하였다. 미륵 신앙의 중심 사찰이었던 익산 미륵사지 옆에는 둘레 80리의 호수였던 황등제(黃登堤)가 있었고, 김제 금산사에는 벽골제(碧骨堤), 선운사 근처에는 눌제(訥堤)가 있었다. 이들 거대한 호수는 원래 미르(용) 신앙이 지배했던 곳이다. 농사지으면서 미르에게 빌다가 불교가 들어오면서 미륵에게 빌게 되었다. 미르가 살고 있던 늪지대에 불교 절을 지을 때는 대량의 숯을 사용하여 메웠다는 전설이 있다. 숯이 촛불? 촛불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