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무용 공연 중 개막 한 달 전에 이미 주요 좌석이 매진되다시피 하는 유일한 작품이 있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호두까기 인형'이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차이콥스키의 친근한 선율과 함께 펼쳐지는 이 환상적인 작품은 발레 관객의 입문작이자 국내 양대(兩大)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동시에 대결을 펼치는 무대이기도 하다.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두 발레단의 미묘한 차이를 분석해 본다.
①안무: 화려(국립) vs 온화(유니버설)
크게 볼 때 국립발레단의 '호두'가 성인 대상 대형 모험극이라면,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는 공들여 만든 어린이·청소년극에 비할 수 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 안무의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버전인 국립발레단 '호두'는 높은 도약과 고난도 회전 같은 발레 고유의 화려한 기술을 드러낸다. 레프 이바노프, 바실리 바이노넨 안무의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버전인 유니버설발레단 '호두'는 어린이 무용수들의 춤과 익살스러운 전투 장면 등에서 좀 더 따뜻한 느낌을 준다. 1막 마지막 '눈송이 왈츠'의 군무 장면에서 국립 '호두'는 무용수가 무대의 일부가 된 듯 일사불란하게 등장하고, 유니버설 '호두'는 시시각각 대열을 바꾸며 역동적인 몸짓을 보여준다.
②무대: 웅장(국립) vs 섬세(유니)
파란색을 배경으로 가운데 흰색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들어선 국립 '호두'의 무대가 장려한 스케일을 자랑한다면, 붉은 색조의 왕궁처럼 표현된 유니버설 '호두'의 무대는 좀 더 섬세한 느낌을 준다. 국립 '호두'의 무대가 어딘가 현실 세계와 통하는 느낌을 주는 반면 유니버설 '호두'의 무대는 동화에 어울리는 공간이다. 2막의 디베르티스망(줄거리와 무관하게 펼치는 춤)은 각각 여기에 어울리게 전개되는데, 국립 '호두'는 각 나라 인형이 자기들 춤을 추는 설정이고 유니버설 '호두'에선 환상의 나라 거주자들이 춤을 추는 얘기가 된다.
③호두까기: 사람(국립) vs 인형(유니)
어린이 관객이 큰 관심을 가질 '호두까기 인형'은 실제 공연에서 어떻게 등장할까? 유니버설 '호두'는 무용수가 포스터에 등장하는 털모자를 쓴 인형 소품을 들고 춤을 추는데, 국립 '호두'는 실제 어린이 무용수가 인형 역으로 등장해 공연 내내 '기마 자세'를 취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유니버설 '호두'는 1막에서 작품의 사회자 격인 드로셀마이어 역 무용수가 실제 마술을 보여줘 동심을 공략한다. 음악 면에선 국립발레단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데, 국내 '호두까기 인형' 중 유일하게 실제 오케스트라 연주(제임스 터글 지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국립 '호두'는 2200석 규모 대극장에서 공연된다는 '장소'의 강점이 있고, 유니버설 '호두'는 16일 동안 국립발레단(12회 공연)의 두 배 가까운 23회 공연을 한다는 '시간'의 강점이 있다.
▷국립발레단 17~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7-6181
▷유니버설발레단 16~31일 유니버설아트센터, 070-7124-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