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세계 기억력 대회에 참가해 한국 최초로 '기억력 마스터(master of memory)' 타이틀을 얻은 정계원(25)씨에게 자동차 번호판 61수5728을 툭 던지고 어떻게 외울 거냐고 물었다. 그는 "무의미한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기억법"이라고 했다.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해 숫자를 이미지로 옮길 수 있어요. 61은 '유일'신, 57은 '옻칠', 28은 '이빨'로 바꿉니다. 유일(61)신이 물(수)에서 옻칠(57)을 하는데 그 대상이 하마 이빨(28)인 거죠. 구체적 장면이 떠올라야 합니다."

광주광역시 송원고를 졸업한 정씨는 연세대 경영학과 휴학 중이다. 군 복무 직후인 2014년 BBC 드라마 '셜록'을 몰아서 보다 기억력 마스터에 대해 알게 됐다. 그는 "정보를 저장하고 꺼내는 기술에 매료됐다"며 "그해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친선 대회 참가 신청을 하고 남들은 취업이나 고시 공부를 하는 도서관에서 카드를 만지며 기억력 훈련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기억력 마스터 정계원씨가 소음 방지 헤드폰을 쓰고 카드 위에 누워 있다. “만나는 사람들 이름이나 지나가는 자동차들 번호판을 외는 연습도 한다”고 했다.

정씨는 2015년 '영재 발굴단'이라는 방송 프로에 전문가로 나섰다가 카드 52장을 5분 안에 순서대로 기억하는 미션을 완수하며 이름을 알렸다. 스마트폰 100개의 패턴 암호 기억해 풀기 등에도 성공한 그는 작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세계 대회에 나갔다. 1000개 이상의 숫자 순서대로 기억하기, 카드 520장을 1시간 안에 순서대로 기억하기 같은 시험을 치러 기억력 마스터 인증을 받았다. 정씨는 "아슬아슬하게 통과했지만 짜릿했던 순간"이라고 술회했다.

"어릴 적에 영재는 결코 아니었어요. 남보다 적게 공부하고 요령껏 성적을 올리는 데만 관심이 많았습니다. 기억력 챔피언들은 비효율을 싫어해요. 의미를 부여할 뿐입니다."

기억력 마스터가 되고 나서 저서 '셜록의 기억력을 훔쳐라'를 출간했고 한국기억력스포츠협회 이사를 맡았다. 내년 2월에는 중앙대에서 제1회 한국국제기억력대회(상금 3000만원)를 연다. 그는 "기억력은 어린이·청소년에게는 집중력과 창의력, 성인에게는 건전한 취미, 어르신에게는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며 "기억력 스포츠를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기억력은 정보를 재구성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좌우한다. 초·중·고교 교가는 가물가물하지만 동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는 원숭이~엉덩이~사과~바나나~기차~비행기~백두산으로 선명하게 기억되는 이유다. 그는 "마스터로 인정받아 기쁘지만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아져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자신만의 공부 비법을 묻자 '목차 외우기'라고 답했다. "목차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걸 파악하면 내용을 개별적으로 외우는 게 아니라 전체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수능시험이 코앞이다. 수험생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팁은 없을까. "좋은 기억은 분류에서 나와요. 각 과목의 목차만 봐도 중요 개념을 뽑아낼 수 있어야겠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정리한 키워드를 보며 전체 맥락을 불러낼 수 있다면 시험장에 들어갈 때 자신감이 생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