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사는 송모(여·26)씨는 요즘 맹물을 마시는 일이 거의 없다. 집에서는 잘 씻은 레몬을 얇게 썬 뒤 물에 넣고 우려 마신다. 날이 쌀쌀해지고부터는 따뜻한 물에 홍초를 풀어 마실 때가 많다.

송씨는 "여름에 입안이 텁텁할 때마다 레몬즙을 탄 물을 마셨더니 갈증도 덜하고 상큼한 느낌이 들더라"며 "이제 습관이 돼서 맹물을 마시면 밋밋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는 외출해서는 라임맛 탄산수를 주로 사먹는다고 했다.

한국인 입맛이 신맛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레몬과 자몽 등 시트러스 계열 과일 수입은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한국외식산업연구소 정경완 연구원은 "특히 이번 여름 기록적인 무더위를 겪고 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신맛에 열광하고 있다"며 "신 음식에 들어있는 유기산이 침샘을 자극해 갈증을 해소하고 식욕을 돋우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외식 시장에서는 깔끔한 신맛이 나는 메뉴가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여름 인기를 끌었던 과일주스 전문점 '쥬시'의 인기 메뉴 상위권은 키위·파인애플·오렌지 주스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단맛이 나는 바나나는 단일 품목으로 많이 팔리기보다는 '딸기바나나 주스'처럼 다른 과일과 섞었을 때 인기가 많았다.

맥주 업계에서는 시큼할 정도로 신맛이 강한 '사워(sour) 맥주'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홍보회사 투고 커뮤니케이션즈의 윤선용 이사는 "최근 국내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몽스카페, 듀체스 드 부르고뉴 같은 사워 맥주가 주목받고 있다"며 "강한 신맛 뒤에 씁쓸함이 조금 남는 맛인데 겨울철보다는 여름 날씨에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고급 원두를 들여와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내려주는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등도 인기다.

직장인 김모(여·30)씨는 "쓴맛이 강한 에스프레소를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비싸도 산미(酸味)가 좋은 드립커피에 푹 빠졌다"며 "향도 좋고 개운한 신맛이라 점심 식사 후 입가심하기에 좋다"고 했다.

커피전문점 '폴바셋'은 프리미엄 커피를 주력 메뉴로 키워왔지만 지난 7월 얼그레이 레몬에이드·페퍼민트 라임에이드·한라봉에이드 등을 새로 선보이기도 했다.

대학생 유모(24)씨는 태국 요리에 매료됐다. 레몬즙을 살짝 뿌린 새우 팟타이를 가장 즐겨 먹는다고 했다.

그는 "재작년 태국에 여행 가서 똠양꿍을 먹어본 후 속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며 "처음엔 냄새 때문에 거부감을 느꼈는데 요즘엔 일부러 태국요리 맛집을 찾아가본다"고 했다.

최수근 경희대 조리·서비스경영학과 교수는 "레몬 성분 중 구연산이 방부(防腐) 효과가 있어 동남아 등 더운 지역에서 식재료로 많이 쓰인다"며 "동남아 요리 문화가 대중화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기는 신맛 요리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