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에는 '무무문(無無門)'이 있다. 일반 사찰의 '일주문(一柱門)' '천왕문(天王門)' '불이문(不二門)'과 다른, 송광사에만 있는 문이다. 평생 '무(無)' 자 화두를 들고 정진(精進)한 조계총림 초대 방장 효봉(曉峰·1888~1966) 스님을 기리는 문이다.
한국 근현대 불교의 대표적 선승(禪僧) 중 한 명이자, 올해 50주기를 맞은 효봉 스님은 별칭이 많다. '엿장수 스님' '돌구통(절구통) 스님' '판사 스님'…. 모두 스님의 이력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작가 이정범씨가 최근 펴낸 '붓다가 된 엿장수'(동쪽나라)는 일제강점기 고뇌하던 한 지식인의 치열한 구도(求道) 과정을 소설 형식으로 정리했다.
평안도 부농(富農) 집안에서 태어난 스님은 평양고보와 일본 와세다대를 나와 판사가 됐다.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으나 어느 날 홀연히 집을 떠난 그는 엿장수 생활을 하며 3년여 전국을 유랑하다 금강산에서 석두(石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금강산에서 수행하던 시절엔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으로 엉덩이 살이 방바닥에 눌어붙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에 밥 구멍과 대소변 구멍만 뚫고 사방을 막아버린 무문관을 짓고 1년 반 수행 끝에 깨치고 나왔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소설엔 은사 석두 스님을 비롯해 만공(滿空) 스님 등 당대의 거목들과 구산(九山), 일초(一超·고은 시인), 법정(法頂) 등 제자들과의 인연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효봉 스님이 앞장선 불교 정화운동 등 현대사의 주요 장면이 씨줄 날줄처럼 엮이고, '지눌 스님을 배우겠다'며 법명을 스스로 '학눌(學訥)'로 바꿀 정도로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정신을 따랐음도 보여준다. 말년까지도 항상 "무(無)라, 무라…"하고 혼잣말했던 효봉 스님은 1966년 10월 15일 "내가 말한 것은 모두 군더더기"라는 게송을 남기고 앉은 채 입적했다.
작가 이정범씨는 박완일 전 조계종전국신도회장과 고은 시인, 그리고 생전의 법정 스님 등에게 취재한 일화를 중심으로 자료를 정리해 효봉 스님의 삶과 수행을 입체적으로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