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문 특파원

지난 20일 찾아간 인도 뭄바이 북쪽 '필름시티'는 거대한 인공 세트장이었다. 영화·드라마 제작을 위해 자연을 통째로 개조했다. 사원·정원·다리 등 실제로 사용해도 될 듯한 대형 구조물들이 즐비했다. 서울 여의도(2.9㎢)의 4분의 3에 가까운 넓이(2.1㎢)에 야외 촬영지 42곳과 스튜디오 16곳이 들어서 있었다. 16세기 힌두 왕국 시대를 옮겨 놓은 듯한 커다란 성채도 눈에 들어왔다. 폭 50m에 높이가 10m를 넘었다.

종합촬영소인 필름시티는 인도 영화 산업의 중심지인 발리우드(Bollywood)를 대표하는 곳이다. 연간 200~300편에 이르는 발리우드 영화 대부분이 이곳에서 촬영된다. 옴베르 사이니 필름시티 프로젝트 조정관리인은 "인도 최고 영화 스타 샤루크 칸(51)도 올해 개봉한 영화 '팬(Fan)'을 여기서 찍었다"며 "하루 평균 40~50편의 촬영이 진행된다"고 했다.

발리우드 영화의 산실 '필름시티'

발리우드는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영화 산업 집적지를 가리킨다. 1913년 인도 첫 장편영화가 만들어진 이래 인재와 자본이 몰리면서 인도 영화 산업을 상징하는 곳이 됐다.

지난 20일 인도 뭄바이의 종합 촬영소‘필름시티’에서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영화·광고 등 하루 평균 40~50편의 촬영이 이뤄지는 필름시티는 발리우드 번영의 상징이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영화‘세 얼간이’‘내 이름은 칸’등은 모두 발리우드산이다. 인도의 연간 제작 영화 편수는 1900편으로, 미국(800편)의 2.4배에 달한다.

인도 영화는 1970년대 들어 총제작 편수에서 할리우드를 넘어설 정도로 발전했는데, 그 기반이 1977년 문을 연 필름시티이다. 뭄바이시가 속한 마하라슈트라 주정부가 유명 영화감독 샨타람 라자람 반쿠드르와 손을 잡고 함께 만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촬영팀 관계자는 "장소 사용료가 사유지의 10분의 1 정도로 저렴하고 주변 환경이 촬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최적의 촬영지"라고 했다.

인도서 맥 못 추는 할리우드 영화

인도 영화 산업의 경쟁력은 12억명이 넘는 방대한 인구와 저렴한 티켓값에서 나온다. 인도의 연간 제작 영화 편수는 1900편 전후로 미국(800편)의 2.4배나 된다. 연간 영화표 판매도 미국(약 13억장)의 배 이상인 27억장에 달한다. 배우 수닐 소니는 "영화 한 편이면 적은 돈으로 2~3시간 즐길 수 있다"며 "영화는 인도 서민들의 국민 문화 활동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인도는 할리우드 영화가 맥을 못 추는 시장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영화의 점유율은 10% 선으로 인도 국내 영화 점유율(70%)에 턱없이 못 미친다.

인도 영화는 이런 경쟁력에도 그동안 세계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민족·다언어 국가인 인도에서는 20여 개 언어로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각각의 언어권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성이 떨어졌다. 내용이 통속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세계시장 개척 본격화

하지만 최근에는 발리우드를 중심으로 인도 영화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도시 주민을 겨냥한 액션 영화나 장르 영화, 로맨틱코미디 등 수준작이 늘면서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세 얼간이' '내 이름은 칸' 등도 발리우드 영화이다.

작품성도 인정받고 있다. 인도 사법 시스템을 고발하는 영화 '법정(Court)'은 2014년 베네치아 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대상을 받았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 출품된 '런치박스'는 관객상을, 베를린 영화제에 내놓은 '다낙(무지개)'은 제너레이션K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각각 받았다. 발라지 텔레필름이 제작해 올해 개봉한 '우드타 펀자브'는 인도 펀자브 지방 마약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그동안 인도 영화에 빠지지 않았던 집단 춤과 노래 장면을 아예 없앴다. 올해 인도에서만 600만명을 동원했고,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아 북미와 영국·뉴질랜드 등지에서도 개봉됐다.

☞발리우드

인도 내에서는 뭄바이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보급되면서 인도 영화가 질적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발리우드 영화업자들이 도시 취향의 상업 영화를 많이 만들다 보니, 세계시장에서도 통하게 됐다는 것이다. 발라지 텔레필름의 사미어 나이르 대표는 "현재 발리우드 주요 제작사가 만드는 영화의 절반 이상이 인도 주요 도시와 북미·유럽의 멀티플렉스 개봉을 노리는 글로벌한 성격의 영화"라고 했다.

뭄바이의 과거 지명인 봄베이(Bombay)와 미국 영화 중심지 할리우드(Hollywood)를 합성한 말.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영화 산업 또는 그 집결지를 의미한다. 다민족·다언어 국가인 인도에서는 20여 개 언어로 각 지역에 특화된 영화가 많이 제작되는 반면, 발리우드에서는 공용어 힌디어를 사용해 세계시장에 통할 수 있는 주류 상업영화를 만든다. 인도에서 매년 제작되는 1900편 가운데 발리우드산은 200~300편 정도이지만, 인도 영화관 매출에서는 40% 이상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