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이웃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재기할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지난 10월 중순 몇몇 신문 지면에 제18호 태풍 차바로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을 돕자는 신문협회 알림글이 실렸다. 이에 맞춰 전국재해구호협회는 ARS(자동응답시스템) 모금 전화번호를 4년 만에 재개통했다. 구호협회는 한동안 인터넷 모금이나 계좌이체, 문자메시지를 통한 기부금만을 받아왔었다. 그러나 지난 26일까지 한 통당 2000원인 ARS 전화는 2003건 걸려오는 데 그쳤다. 협회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ARS 전화번호를 공개하면 하루에 수천 통씩 전화가 쏟아졌다"며 "재난 후 일주일 내에 모금액의 70~80%가 모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ARS를 통한 모금 방식은 사실상 끝난 것 같다"고 했다.
태풍·지진 등 재난 때마다 신문·방송 등을 통해 홍보되던 ARS 모금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국가 재난이 닥치면 비극적인 장면을 편집해 보여주고 성금을 유도하는 이른바 '최루성(催淚性) 모금'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따르면 ARS를 통한 모금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1998년 여름 집중호우 때 400만 통을 넘겼던 ARS 모금 통화 건수는 지난 2012년 태풍 볼라벤 때 10만 통으로 폭락했다.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그동안 ARS 전화를 개통하지 않다가 지난 9월 경주 지진, 10월 태풍 차바가 차례로 닥치자 오랜만에 ARS 번호를 연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ARS는 방송이나 신문에 보도될 때 효과가 가장 좋은데 요즘엔 보도도 잘 안 될뿐더러 기부자들도 온라인 모금을 더 간편하게 여긴다"며 "과거에 비해 정기 후원을 하는 기부자들이 많아진 것도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997년부터 방영한 KBS 기부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는 '전화 한 통에 2000원'으로 유명했지만, 방영 17년 만인 2014년 12월 폐지됐다. 당시 KBS 측은 "모금 방식이 낡은 듯해서 새로운 형태의 기부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ARS를 통한 모금을 전체 모금액의 1% 미만으로 보고 있다. 김석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본부장은 "즉흥적이고 감정에 호소하긴 하지만 기부 문화를 장려한다는 점에서 ARS 모금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며 "부담 없이 도울 수 있는 ARS 번호를 당분간 유지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 돈을 걷어 재난을 극복하는 모습은 이제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복지단체 관계자는 "국가가 수습해야 하는 재난을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해결한다는 발상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많아졌다"며 "요즘은 해외 결연을 한 제3세계 어린이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자동이체하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이벤트로 모금하는 캠페인)'가 일반인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서 사회복지단체에서도 기부를 유도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고민이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