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소비자들의 '클릭' 덕분이다. 콧대 높던 글로벌 브랜드가 한국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해외 물건을 직접 사는 '직구' 열풍에 '한국만을 위한 서비스' '한국 맞춤형 상품'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SNS로 해외 트렌드를 빨리 알고 제품을 빨리 구매하려는 소비자를 위해 일부 패션 브랜드에선 'See Now, Buy Now'(현장 직구·바로 보고 바로 산다)로 판매 방식을 바꿔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직구에 고객 뺏길라, "한국에만 출시"
혼수로 인기 많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냄비나 청소기가 최근 직구 상품으로 인기가 높다. 많게는 60%까지 가격 차가 나기 때문. 온라인 오픈 마켓 11번가가 올 1월 1일부터 10월 9일까지 주방·조리기구·식기 등의 해외 직구를 살펴본 결과,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119% 늘었다. SK플래닛 해외쇼핑팀 이영조 팀장은 "이전엔 독일 휘슬러, WMF 같은 40~50대 주부들을 위주로 한 냄비 세트 등이 잘 팔렸다면, 최근엔 영국 식기 브랜드 덴비, 핀란드 법랑냄비 뮬라, 이탈리아의 커피 머신 드롱기 등 해외 직구에 익숙한 20~30대 여성들로 구매층이 젊어진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올해 밥그릇·국그릇 같은 한국형 식기를 출시한 핀란드 리빙용품 이딸라는 지난 1일부터 한국에서만 파손보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사용하다 물건이 깨질 경우, 제품과 보증서를 매장으로 가지고 오면 같은 제품으로 1회 무상 교환해준다. 보증 기간은 구매일로부터 1년. 이딸라의 떼에마 띠미 한식기를 포함해 따이가·탄시 등의 제품들이다. 식기 브랜드 덴비는 올 초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뒤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형 국과 밥그릇을 제작했다.
주방 브랜드 휘슬러는 볶거나 익힌 뒤 끓이는 한국식 조리 문화에 맞는 전용 제품을 선보인 데 이어 최근엔 한국 제품 구매자를 대상으로 셰프에게 요리를 배우는 무료 개인 강좌 서비스를 도입했다. 가전 브랜드 스메그는 1인 가구가 느는 한국 스타일에 맞게 한국형 냉장고를 출시했고, 독일 가전 밀레도 최근 한국 라인을 따로 출시했다.
◇"바로 보고 바로 산다"
'폐쇄성' '희소성'을 강조하며 패션쇼를 통해 일부에게만 공개했던 명품 브랜드도 달라지고 있다. 시즌 시작하기 6개월 앞서 쇼를 보여주고 주문에 맞춰 6개월 뒤에나 물건을 팔던 과거와 달리 '바로 보고 바로 사는' 트렌드로 바꾼 것이다. SNS를 통해 패션쇼와 거의 동시에 전 세계에 신상품이 소개되는 세상에 6개월 뒤 상품을 내놓는 것은 너무 늦다는 게 브랜드의 판단이다.
버버리·랄프로렌·톰포드 등이 이번 가을 시즌 실험에 나섰고, 깜짝 성공이라는 평가다. 지난 9월 20일(한국 시각) 런던 패션 위크를 통해 가을 상품을 선보인 버버리는 당일 영국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 매장에 상품이 걸리자마자 대거 매진됐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탤런트 최지우가 지난 22일 올가을 시즌 버버리 재킷을 입고 드라마 발표회장에 나서자 국내 플래그십 매장으로 전화가 빗발쳤다. 예전 같으면 6개월 뒤에나 구할 수 있는 제품을 그 자리에서 당장 구매하는 것이다. 버버리 공식 온라인 몰에선 캐시미어 스웨터와 셔츠 등 일부 상품이 매진됐다. 랄프 로렌 역시 일본과 홍콩 매장에 먼저 제품이 들어오자 국내 VIP 고객들이 '예약 주문'해 일부 제품은 매진 직전이다. 버버리의 총괄 디렉터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SNS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더 놀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