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俗談)에는 우리말을 모국어로 쓰며 살아온 이들의 지혜와 처세술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자기계발서에 담겼을 내용이 짧은 한 문장에 압축돼 들어 있는 셈이죠."

지난 5일 김승용씨가 서울 광화문‘세종이야기’한글 자모 전시물 앞에서 책을 들고 웃고 있다.

인터넷과 SNS가 언어환경을 지배하는 시대에 속담은 구시대의 유물이 된 것일까.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뿐 속담의 현대적 변용이라고 할 경구(警句)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유통되고 있었다. 최근 '우리말 절대지식'(동아시아)을 낸 김승용(48)씨는 "구글과 네이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옛날 속담의 현대적 변용으로 볼 만한 사례들이 매우 많았다"면서 "자동차와 인터넷, 게임 등 다양한 일상의 모습이 반영된 문장들을 옛 속담과 함께 모았다"고 말했다.

모두 3091개의 옛 속담을 정리한 그의 책은 뜻풀이뿐 아니라 같은 의미로 요즘 사용되는 경구를 함께 소개한 것이 특징.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유행시킨 '너나 잘하세요'로,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벤치에서 우느니 벤츠에서 울어라'로 바뀌어 쓰이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게임 세대는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보다 '한 판만 하려다 엔딩 본다'에 더 재미를 느낀다.

프리랜서 출판편집자인 김씨의 속담 탐구는 우연히 시작됐다. 2007년 봄 책을 읽다가 '재미나는 골에 범 난다'는 문장을 발견했는데 도통 뜻을 알 수 없었다. 사전엔 '남몰래 재미 붙여 자주 하면 결국 봉변 당한다'고 씌어 있었지만, 왜 '재미'가 '범'을 부르는지 오히려 더 궁금했다. 검색을 해봐도 똑같은 설명뿐. "자판에서 Ctrl-C(복사하기)와 Ctrl-V(붙여넣기)만 무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죠. 정보는 넘치는데 역설적으로 공들여 만든 콘텐츠는 가물에 콩 나듯 하는 거예요." 직접 찾는 수밖에 없었다. 책을 뒤지고 궁리를 거듭해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이건 '남녀 간의 재미'예요. 그 옛날 사랑하는 남녀가 인적을 피해 골짜기로 갔다가 봉변을 당하는 거죠." 이는 말 자체로 뜻이 통하면서 2차적 의미가 만들어지는 속담의 구성 방식에도 부합했다.

600쪽 넘는 책이 나오기까지는 꼬박 10년이 걸렸다. 일상 대화뿐만 아니라 영화, TV프로그램, 트위터 등까지 뒤져 속담의 용례들을 모았다. 국문학 전공자(동국대 대학원)인 그는 "속담의 현대 버전을 모아보니 랩처럼 어미(語尾)가 반복되거나 운율(韻律)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었다"면서, '헌신하니 헌신짝 된다' '니가 하면 비리 내가 하면 의리' 등을 소개했다. 속담의 유래와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댑싸리('댑싸리 밑 개 팔자'), 홍두깨('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마름쇠('공짜라면 마름쇠도 삼킨다') 등을 직접 촬영한 사진 300여 장도 넣었다. 대화에 속담을 자주 쓰게 된 것은 일종의 부작용(?)이다. 그는 "야근하는 동료에게 일찍 퇴근하자면서 '일 다 하고 죽은 무덤 없다' 같은 말을 쓰는데, 짧은 한마디로 의미 전달이 강렬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면서 "다양한 속담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철학이 언어 속에 녹아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