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털매머드(Woolly mammoth) 표본들을 보면서 행복했는데 일흔 살이 되니까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 싶더군요. 일본에서도 기증 요청이 빗발쳤지만 한국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4세 때 조부를 따라 일본에 건너온 아버지의 삶을 떠올리면서 조국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박희원 관장이 1990년대 시베리아 얼음 바다에서 직접 발굴한 털매머드 다리뼈 표본들 틈에 앉아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 국적의 재일 교포가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직접 발굴한 털매머드를 비롯해 신생대 빙하기 포유동물 화석 표본 1300여 점을 국내에 기증했다. 약 1만년 전 멸종된 털매머드의 연령대별 이빨과 두개골, 상아(최대 크기 약 3.3m), 늑골·어깨·골반·다리뼈 등 각 부위 표본들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피부조직과 털까지 포함돼 있다. 털매머드의 피부조직과 털이 국내에 확보된 것은 처음이다.

주인공은 사업가이자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고생물학박물관을 운영 중인 박희원(69) 관장. 그는 27일 통화에서 "1994년부터 3년간 러시아 시베리아 야쿠츠크 일대의 얼음 바다에서 발굴한 털매머드 화석을 비롯해 20년 넘게 수집한 동굴곰, 털코뿔소, 동굴사자 등 희귀 화석 표본들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기증했다"고 했다. 털매머드는 멸종한 매머드 일종으로 긴 털과 커다란 상아가 특징이다.

"어릴 때 아프리카코끼리에 대한 책을 읽고 고대 생물에 관심 갖기 시작했어요. 1989년 우연히 'NHK 매머드의 묘지'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동을 받아 다음 날 방송사로 찾아갔죠. 어디 가면 털매머드를 발굴할 수 있는지 묻고 연락처를 받아서 직접 현장으로 갔습니다."

그는 1994년 러시아국립과학아카데미 매머드위원회 정회원이 된 후 자비를 들여 발굴단을 꾸렸다. 러시아동물학연구소, 도쿄대, 모스크바대 소속 연구자 등 18명을 모아 발굴 작업을 벌였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하루 13~14시간씩 표본을 찾아다녔어요. 다리뼈 하나에 20㎏이 넘어요. 발굴 현장에서 2㎞ 떨어진 베이스캠프까지 짊어지고 옮겨야 했지요."

기증을 결심한 후 그는 적당한 기관을 물색했다.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학술적 가치를 밝힐 수 있는 전문 연구자가 있어야 하고, 여러 사람이 볼 수 있어야 하며, 표본을 잘 관리할 수장고가 있을 것.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털매머드는 초·중·고교 교과서에 간단히 등장하지만 생활 습성, 형태학적 특징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이번 자료를 통해 신생대 빙하기 환경과 생태 연구, 전시·교육까지 가능하게 됐다"고 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1월 표본들을 국내로 이송한 후 분류와 보존 처리 작업을 해왔다. 연구소는 발굴에서 보존 처리까지 모든 과정을 전시와 교육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10월 24일부터 대전 연구소 내 천연기념물센터에서 특별전을 열고 털매머드 핵심 표본 30여 점을 공개한다. 개막에 맞춰 방한할 예정인 박 관장은 "한국 어린이들에게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게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체험형 전시로 꾸몄으면 좋겠다. 이 표본들을 보면서 고대 생물에 대해 흥미를 갖고 더 큰 꿈을 키울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