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업계 직원들이 모여 언제 얼마나 가격을 올릴지에 대한 가격정보나 경쟁사의 입찰 희망 공구 등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면 답합으로 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가격정보와 입찰예정정보에 대해 가격을 올리는 민감한 정보로 보고 담합으로 판단해 과징금 등을 부과한다. 하지만 법원에선 가격 정보를 주고받은 것 만으론 담합으로 판단하지 않는 판례가 늘고 있다.

다만 공정위 전문 변호사들은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어 기업들이 최근 승소한 사례가 늘고 있지만 같은 처분을 받았어도 세부적인 정황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며 업계 정보 교환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유럽연합(EU)과 호주 등은 정보교환만으로 담합을 인정한다”며 “해외에서 소송을 당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한다”고 강조한다.

조선비즈는 공정위 처분과 법원 판결문을 분석해 어떤 경우 담합이 인정되는지 최근 경향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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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 라면담합 소송에서 ‘정보교환만으로 담합은 아니다” 판결 후 공정위 줄패소

공정위는 동종업계 직원들이 모여 정보교환을 하는 행위를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담합)로 판단한다. 하지만 법원은 정보교환 행위 만으로 담합하자고 합의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례가 올해 다수 나왔다.

대법원이 지난해 12월 24일 농심 등 4개 라면회사에 대한 공정위 처분에 관해 판결내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공정위는 농심과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4개사가 2001년 5월~2010년 2월 6차례에 걸쳐 가격을 일제히 인상하는 과정에서 가격인상에 필요한 정보와 판매실적 등을 서로 교환했다며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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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라면 업계 1위 기업인 농심은 2013년 3월 22일 ‘라면 가격 담합’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050억원을 부과받았다. 농심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법 행정2부(재판장 이강원)는 2013년 11월 이들이 라면 가격을 순차적으로 올린 것을 담합으로 보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농심이 다른 라면제조업체와 가격인상 일자나 인상내용에 관한 정보를 교환한 사실은 있다"면서도 "그것만으론 가격을 함께 올리기로 ‘합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 “정보교환이 답합 아니라는 법원 판결, 정보교환 하라는 뜻은 아니다”

농심이 대법원에서 승소한 뒤 하급심에서도 정보교환만으로는 담합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농심 판결 직후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황병하)는 6개 대형 화물상용차 제조사들과 담합한 혐의로 과징금 34억원 부과받은 독일 만(MAN)트럭버스코리아가 낸 과징금 취소 소송에서 “공정위는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기업들이 가격 정보를 교환했다고 해서 가격 담합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경인운하 사업에서 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SK건설도 지난 7월 21일 승소했다. 공정위는 경인운하사업 등 입찰에서 대형건설사들이 공구분할 합의를 했다며 2014년 4월 3일 SK건설 등 11개 건설사들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991억원의 과징금 처벌을 내렸다. SK건설은 56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재판장 윤성원)는 “정보교환만으로 담합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이유로 SK건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같은 모임에서 정보를 교환했어도 내용과 각 회사의 상황에 따라 판결이 엇갈리기도 했다.

공정위는 2014년 3월 현대건설, 삼성물산, 포스코건설, 현대산업개발, 대림산업, SK건설, 대우건설, GS건설 등 8개 건설사에 20억~5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이들이 대구도시철도 3호선 턴키대안공사 8개 공구 입찰 과정에서 수차례에 걸쳐 영업팀장 모임을 갖고 정보를 교환하는 등 부당한 공동행위(담합)를 했다고 밝혔다.

특히 공정위는 “포스코건설은 3공구, 대우건설은 1공구를 분할받기로 합의했다가 포스코건설 임원이 입찰 전에 대우건설을 찾아가 입찰 공구를 바꾸기로 했다”며 8개 건설사 중 두번째로 많은 과징금(52억5000만원)을 부과했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 지난 6월 승소했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윤성원)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정보교환으로 얻은 실익이 없었다”며 “정보교환 만으로 담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과징금을 받은 포스코건설은 지난달 패소했다.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이동원)는 “한자리에서 정보교환을 했더라도 각 건설사의 입장과 교환한 정보에 따라 담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포스코건설이 정보교환 모임에 참여하고 대우건설과 공구를 교환하는 등의 방법으로 공구를 분할하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를 함으로써 제1공구를 배정받아 입찰에 참여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명시적인 합의뿐 아니라 묵시적인 합의도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다”면서 “일부 사업자들 사이에서만 (담합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그것이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로 평가되는 한 담합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형로펌에서 10년 넘게 공정위 사건을 맡은 한 변호사는 “공정위는 기업간 합의의 결과물이 정보교환이라는 시각이지만, 법원은 정보교환을 합의까지 가지 않은 단계로 보고 있다”며 “법원이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법원이 공정위에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는 경향때문이지 민감한 정보를 자유롭게 교환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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