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금지, 연애 금지, 휴대폰은 학원에 맡겨놓을 것, 몸에 문신은 안 됨….'
인천에 사는 재수생 박모(여·19)씨는 올해 초 재수 학원에 등록하면서 생활 규칙 준수 서약서를 썼다. 이 학원은 강사들이 강의하지 않고 학생들이 자율 학습을 하고 필요할 경우 인터넷 강의를 듣게 하는 '독학(獨學) 재수 학원'이다. 박씨는 매일 학습계획서를 학원 조교에게 낸다.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듣다가 딴짓을 하면 박씨의 컴퓨터를 원격으로 감시하는 조교가 경고를 한다. 규칙을 어기면 벌점을 받는데 일정 점수를 초과하면 학원에서 제적당한다. 박씨는 "혼자 공부하면 의지가 흐트러지기 쉽기 때문에 학원과 독서실의 중간 형태인 독학 재수 학원을 찾게 됐다"며 "종합 학원에서 모든 과목을 강의 듣는 것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재수생들 사이에서 종합 대입 학원보다 독학 재수 학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독학 재수 학원은 몇 년 전부터 소규모 입시 학원을 중심으로 생겨났고 최근엔 대형 입시 학원에서도 우후죽순 독학재수반을 개설하고 있다. 독서실을 제공함과 동시에 생활 관리와 입시 컨설팅까지 도맡아 해주고 강사나 대학생 멘토들이 학습 관련 질문을 받아주는 식으로 운영한다.
재수생들은 이 학원을 줄여서 '독재'라고 부른다. 생활 관리가 엄격하다 보니 독재(獨裁)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현재 전국에 있는 독학 재수 학원은 약 350곳으로 추정된다. 비용은 월 50만원 선으로 일반 재수 학원의 절반 정도이다.
무엇보다 입시 환경의 변화가 독학 재수 열풍을 불러왔다는 분석이 많다. 한 입시 전문가는 "이른바 명문대들도 대부분의 학생을 수시 전형에서 충원하기 때문에 수험생들 사이에서 수능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인식이 있다"며 "입시 전형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학원에서도 무조건 수능을 대비하기보다 개인별로 세분화한 입시 상담을 하는 역할이 커졌다"고 했다. 종로학원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과거 수험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서울의 유명 학원으로 몰렸다면 인터넷 강의 질이 좋은 요즘은 각자 집 근처에 있는 독학재수반을 선호하는 추세"라며 "수능에서 EBS 연계율이 70%나 된다는 사실 자체가 학생들을 칠판보다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불러들였다"고 했다.
종로학원에서 독학 재수 중인 정인하(여·19)씨는 "지난해 수시 전형에서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지 못해 대입에 실패했다"며 "필요한 과목 한두 개만 집중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재수생 진승균(19)씨는 "사설 모의고사를 매달 치를 수 있고 학교처럼 쉬는 시간 종이 울리는 데 맞춰 생활하기 때문에 혼자 독서실에 다니는 것보다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자기 주도 학습이 안 되는 수험생이 무작정 독학 재수에 뛰어들면 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한다. 중앙LNC학원 조인찬 대표는 "처음부터 수능 성적 상위 30% 학생만 받는다"며 "혼자 하는 공부인 만큼 개인의 의지나 학습 계획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다른 재수 전문 학원 원장 역시 "독학 재수는 수능 평균 3등급 이상인 학생에게 권장한다"며 "하위권 학생의 경우 독학 재수 학원을 다녀도 성적 상승률이 높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