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부동산 중개업체에서 일하는 20대 중국인 A씨는 올봄까지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민항(閔行)구의 한 빌라에 월세 5000위안(약 83만원)을 내고 세들어 살았다. 함께 사는 친구와 월세를 반씩 냈다. 그런데 계약일이 끝날 때쯤 집주인이 월세를 2000위안이나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A씨와 친구는 7000위안이나 하는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더 외곽 지역인 쑹장(松江)구로 이사할 수 밖에 없었다. 새로 이사간 집에서 회사까지는 전보다 40분 더 걸린다. 그는 출퇴근 이동 시간이 길어져 삶의 질이 확 떨어졌다고 했다.
남자 주인공이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영화 ‘her(허)’는 미래 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초고층 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선 '미래 도시'를 거닐며 컴퓨터 운영체제와 대화를 나눈다. 이 미래 도시의 배경이 상하이 푸둥(浦東) 신개발 지구다. 상하이를 동과 서로 가르는 황푸(黄埔)강의 동쪽 푸둥에서는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고층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황푸강의 서쪽 푸시(浦西) 지역에서도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공사장을 쉽게 볼 수 있다. 땅이 개발되고 대형 쇼핑몰과 지하철역이 들어설 때마다 집값은 점점 오른다.
◆ 끝없는 개발에 부동산 가격 치솟아
상하이에서 우리돈 8억원짜리 아파트는 고가 주택이 아니다. 중국 부동산 중개 사이트 안쥐커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상하이에서 집값이 500만위안(약 8억2800만원) 이상인 주택이 전체 주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6%에 달했다. 지난해(28.7%)보다 비중이 8%포인트 가량 상승했다. 상하이에서 1제곱미터(㎡)당 10만위안(약 1657만원)이 넘는 주택 수도 3년 전 대비 13배 증가했다. 중국 100개 대도시 평균 집값(7월 기준)이 제곱미터당 1만2009위안인 것과 비교하면 상하이 주택 가격은 상당히 높은 셈이다.
올해 4월에는 푸둥 지역 화교성에 제곱미터당 가격이 34만위안에 달하는 호화 주택이 등장했다. 이 주택이 포함된 타운하우스의 전체 가격은 2억4200만위안에 달한다. 푸둥에서는 부유층 수요를 겨냥한 고급 아파트와 주택 건설이 끊이지 않는다.
푸둥은 중국의 급격한 도시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의 도시화율은 1978년 17.9%에서 2013년 53.7%로 상승했다. 푸둥은 개발되기 전 허허벌판이었던 1970년대 우리나라 강남처럼 황량했다. 그러나 ‘둥지를 지으면 새가 올 것이다’라는 덩샤오핑의 말에 따라 1992년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개발 붐이 일면서 고층 빌딩들이 속속 올라갔다. 지난해에는 푸둥 금융상업지구 루지아주이(陆家嘴)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상하이 타워가 문을 열었다. 상하이 타워는 높이 632미터(127층)로, 중국에서는 가장 높은 빌딩이다.
푸둥 건너편 푸시 지역에서도 부동산 개발을 위한 토지 경매 열기가 뜨겁다. 지난달 상하이 시내 명소인 인민광장, 난징동루에서 가까운 신징안구(新静安區)에서는 부동산 개발업체 롱신(融信)이 두 필지의 땅을 110억위안에 낙찰받았다. 완커, 바오리 등 18개 부동산 개발업체와의 경쟁 끝에 롱신이 땅을 차지했다. 롱신은 앞서 상하이의 칭푸구와 신장완청 지역에서도 10억위안, 31억위안 규모의 땅을 낙찰받았다. 롱신은 올해 홍콩 증시에 상장하면서 본사를 푸젠에서 상하이로 옮겼다. 롱신은 “상하이는 세계 금융 중심지로서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커 부동산 개발 전망도 밝다”고 했다.
◆ 고강도 부동산 규제 정책에도 경기 과열 여전
중국 내륙의 일부 도시는 개발 후에도 비어있는 건물이 많아 유령 도시로 불리지만, 상하이는 사정이 다르다. 개발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부동산 경기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올해 2월 상하이 신규 주택 가격 상승률은 2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전 가격 대비 평균 상승률은 20.6%로, 선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상하이 시정부는 올해 3월 부동산 규제 정책을 새로 발표했다. 신규 주택과 기존 주택 모두 거래량이 역대 최대 수준으로 증가하자 주택 대출과 관련한 신용 위험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처에 나선 것이다. 주택담보비율을 낮추고 주택 구매 자격 심사를 강화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는 진정되지 않았다. 3월 신규 주택 일거래량은 500여채 수준이었으나, 지난달에는 2000채를 넘어섰다. 주택 거래량이 크게 늘고 거래 가격이 급등하면서 지난달 말부터 상하이 시정부가 새로운 부동산 규제 정책을 내놓을 거란 소문이 퍼졌다. 기혼자의 주택 구매 선불 계약금 비율을 70%로 높일 거란 소문이 돌면서 서류로만 이혼하는 위장 이혼이 급증했다. 중국 언론은 상하이 혼인등기소에서 웃으며 이혼 서류를 제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도했다. 일부 등기소는 이혼 신청자가 몰리면서 문을 일찍 닫기도 했다. 상하이 당국은 이 소문을 부인하며 허위 소문을 유포한 부동산 중개업체들을 적발해 영업중단 등의 조치를 내렸다.
상하이로 유입되는 인구가 늘면서 앞으로도 주택 수요가 더 많아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상하이 인구는 1995년 1300만명에서 지난해 2400만명으로 증가했다. 부동산 컨설팅 기업 세빌스는 "상하이가 세계 금융·기술 혁신 센터로 더 발전하려면 외부에서 더 많은 인재를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상하이 주택 시장에서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