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이 다 자란 거 같아.’ 이사하던 날 우연히 발견한 일곱살 때 썼던 일기장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어법에도 완전히 어긋난, 표현하고 싶은 것은 터질듯이 많은데 언어 성장이 더디다보니 제멋대로 쓰여진 이 문구를 들여다보며 그때나 지금이나 ‘자유롭게 착각하는 버릇’은 여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 자라다니요. 저는 늘 방황하는 영혼이었고, 지금도 방황 중입니다. 특히나 바람이 불어들어오는 가을이 올 때면 쓸데없는 잡념에 사로잡히고, 그 속에서 홀로 상처받고, 상심하며, 괴로워하다 결국 방황의 길로 접어들곤 합니다.
입사 2년차인 지금은 방황할 겨를도 없지만, 기자로서 잘하고 있는지, 선배 동료들로부터 미움받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등등 틈날 때마다 자아 고민에 빠져들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이번 가을은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으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제 삶에서 힘들었던 몇몇 굵직한 시기에 제게 위안을 주었던 책입니다. 힘든 일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모든 것이 눈앞을 가렸던 그 시기에 제가 ‘방황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데미안을 중학생 시절에 한번, 대학 졸업반 시절에 한번 읽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청소년기엔 주인공 싱클레어가 찌질하고 데미안은 쿨가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책을 덮어버렸습니다.
이후 10년 뒤 이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실연을 당하고 한참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죠. 그래서인지 싱클레어가 방황하고 고뇌하는 모습에 공감이 참 많이 갔습니다.
덕분에 왜 까였는지(남자에게 차였는지) 돌이켜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그 시기를 이겨낸 것 같습니다. 힘들어만 할게 아니라 싱클레어처럼 지독한 방황을 성장의 계기로 만들어보고 싶었거든요.
싱클레어는 여러번 방황을 합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날수록 방황의 기간이 줄어들고 안정기가 늘어납니다. 어느 학자는 이것을 스프링 성장론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방황과 안정의 시기가 거대한 원을 그리며 반복하다가 시간이 지날 수록 작은 원을 그리며 결국 한 점으로 수렴하며 방황을 하지 않게 되는 지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싱클레어는 결국 완전한 자아를 완성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일인지는 의문입니다. 헤르만 헤세도 결국 소설 ‘싯타르타’를 통해 이미 완성된 자아를 가진 주인공이 또 다시 모험을 떠나는 과정을 그려냈으니까요.
늘 성장기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그린 헤세의 소설을 읽다보면 안도감에 가까운 위안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방황하는 주인공을 보며 지금의 나를 안심하고, 결국 성장해내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는 끝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방황의 세월을 보내고서도 또 가을을 타고 있는 분들께 ‘데미안’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