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조 카이로 특파원

얼마 전 아프리카 르완다에 파견된 한국 여성 외교관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수술로 아기를 낳았다는 기사를 썼다. 출고 후 잘못 쓴 문장이나 표현은 없는지 살피다가 한 군데에서 걸렸다. 아내의 해외 근무를 위해 남편이 한국 직장을 그만두고 르완다에 같이 가 '내조'한다고 썼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외조'가 맞았다.

고치긴 했는데 개운하지 않았다. 국어사전은 외조를 '남편이 아내의 사회활동을 돕는다'는 뜻으로 설명한다. 전업주부 역할을 누가 하든 남성 배우자가 여성 배우자의 사회활동을 뒷바라지하면 외조라는 뜻이니 외조는 '돕는다'는 뜻보다는 '남편'에 방점을 둔 표현이다. 부부 사이에서 '외'를 남성, '내'를 여성으로 규정한 이런 설명은 명백히 성(性) 차별적이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 아내를 살림하는 남편이 배웅한다면 이 또한 '안에서 뒷바라지하는 것'이니 내조가 더 맞지 않나 싶었다.

언어에는 그 사회의 통념이 녹아 있고 사회성과 역사성을 지닌다. 과거 남자는 보통 집 밖에 나가 식량을 구해오거나 돈을 벌었고 여자는 집 안에서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도맡았던 것이 언어에 선입견으로 고착된 것이다. 부부가 서로를 '바깥양반'과 '안사람'이라고 칭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기혼 여성을 그저 '안사람'이라 인식하기엔 오늘날 수많은 '안사람'이 사회에 진출해 '바깥일'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10명 중 8명이 여교사일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아 남학생 교육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할 정도다. 금녀(禁女)의 직업도 대부분 사라져 비행기 조종사·자동차 정비사·소방관으로 일하는 여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미 12년 전 여성 대법관이 탄생했고, 여성 대통령도 나왔다. 그런 점에서 내·외조의 쓰임뿐 아니라 어원이 '안의 것'인 '아내'도 시대착오적인 면이 있다.

여성 인권이 후진적인 편이라고 평가되는 중동에서조차 내·외조를 뜻하는 단어가 없다. 그냥 영어처럼 '돕는다' '거든다'는 표현만 쓴다. 우리나라의 여권(女權)이 여자에게 운전도 못 하게 하고 온몸에 부르카를 뒤집어쓰게 하는 지역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어는 사고(思考)의 틀이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 없는 사고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여성의 정체성을 '집 안'으로 국한하고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이례적인 경우로 인식하는 듯한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성차별적 발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대상과 불협화음을 내는 내·외조의 쓰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