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플로스 코레, 기원전 530년경, 대리석, 높이 117㎝,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소장.

흔히 고대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은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온통 흰색이라고 오해한다. 눈동자도 없어서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흐릿한 표정이 그리스 조각의 매력이라는 사람도 봤다. 19세기까지,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1886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 ‘페플로스 코레’는 그리스의 조각들이 사실은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고, 금속 장신구로 치장까지 하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예다.

'코레'는 그리스어로 젊은 여성을 뜻한다. 당시에 함께 발굴된 '코레'들이 대부분 주름이 많이 잡힌 얇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었던 데 반해, 이 조각은 두꺼운 모직 천을 반으로 접어 양 어깨에 고정하고 허리를 묶는 옷인 '페플로스'를 입고 있어서, '페플로스 코레'라는 별명을 얻었다. '페플로스 코레' 또한 원래의 색을 거의 잃었지만, 머리카락과 눈동자만큼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녀의 머리와 귀, 어깨에는 구멍이 나 있어서, 화관과 귀걸이, 옷핀 등이 실제로 달려 있었다고 추정된다. 사라지고 없는 왼팔은 앞으로 내밀어 무언가를 쥐고 있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여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사제의 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활과 화살을 쥔 여신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여신이든 사제든 ‘페플로스 코레’는 그리스 조각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불식시킨다. 많은 이가 그리스의 누드상이라고 하면 여체의 미를 기대하지만, 사실 ‘코레’는 항상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옷을 입고 있고, 누드였던 것은 오히려 젊은 남성을 조각한 ‘쿠로스’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올림픽이 한창인데, 유독 여자 선수들을 두고 실력이 아닌 몸매를 평가하는 요즘의 행태는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