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좌우 하르(날씨가 덥다)." "하다 캄 돌라르(이거 몇 달러예요)?"

주말인 지난 7일 오후 서울 지하철 서대문역 부근의 한 커피 전문점. 히잡(이슬람교도들이 머리에 쓰는 스카프)을 두른 30~40대 여성들이 테이블과 주문대에서 아랍어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이 되자 이슬람식으로 차도르(전신을 가리는 망토)를 입은 중동 여성들이 레지던스 호텔(아파트·오피스텔형 숙박 시설)에서 우르르 몰려나왔다. 인근 마트로 들어간 이들은 레몬과 요구르트, 치즈 등으로 장바구니를 채웠다.

레지던스 호텔이 몰려 있는 서대문역 일대가 UAE·사우디 등 중동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바비엥1 레지던스의 경우 객실의 50% 이상을 중동 지역 장기 투숙객들이 차지하고 있다. 프레이저플레이스 등 다른 레지던스 호텔에도 중동 관광객 비중이 높다. 레지던스 업계에 따르면, 서대문역 부근 레지던스 호텔에 묵는 중동 관광객 수는 하루 평균 600여 명 수준이라고 한다.

이 일대의 중동 관광객 90% 이상은 의료 관광을 위해 한국을 찾은 환자와 가족들이다. 한국 의료 기술의 전문성과 안전성이 알려지면서 2009년 600여 명에 불과했던 중동 출신 환자는 지난해 6000명을 넘었다. 5년 만에 10배로 급증한 것이다. 이들이 찾는 의료 분야도 성형이나 미용 위주에서 요즘은 치과 치료, 건강검진, 암 같은 중증 치료 등으로 다양해졌다.

중동 관광객들이 호텔 대신 서대문 레지던스촌에 자리 잡은 이유는 이슬람식 음식 문화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무슬림(이슬람교도)인 이들은 이슬람 율법에 맞게 조리된 '할랄(halal) 푸드'만 먹는다. 대표적으로 돼지고기나 알코올 성분이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외식(外食)이 어려워 직접 취사가 가능한 레지던스에 숙박하는 것이다. 또 중동 관광객들은 배우자와 형제자매까지 대가족 단위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호텔보다 넓으면서 숙박비가 저렴한 레지던스를 선호한다고 한다. 가족 10여 명과 함께 한국에 온 UAE 여성 모네(여·49)씨는 "이태원 모스크 근처에 있는 할랄 전문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 와서 요리해 먹는다"고 했다.

15일 오후 서울 지하철 서대문역 부근의 한 레지던스 호텔에 투숙한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이 객실에 모여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있다(위 사진). 서울 서대문의 한 빵집에 ‘NO PORK(돼지고기 없음)’ 라벨이 붙은 샌드위치가 진열돼 있다(왼쪽 사진).

[할랄 (halal)이란?]

[이슬람 여성들은 언제부터 히잡을 입을까?]

중동 출신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서대문역 일대는 중동의 한 작은 마을처럼 변하고 있다. 상점들은 무슬림들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내놓기 시작했다. 편의점·마트에서는 물에 레몬을 넣어 마시고, 음식에도 레몬즙을 뿌려 먹을 정도로 '레몬'을 좋아하는 중동인들을 위해 매일 레몬을 수백 개씩 들여놓고 있다. 한 마트 직원은 "한국인들은 레몬을 거의 안 찾는데 중동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레몬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레지던스 인근 빵집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들을 위해 햄·베이컨을 뺀 샌드위치를 팔고 있다. 샌드위치 위에는 'NO PORK(돼지고기 없음)' 라벨도 붙여 놓는다. 생크림을 만들 때 들어가는 알코올 성분을 뺀 무슬림 전용 '무알코올 생크림 케이크'도 따로 만든다.

이달 초 레지던스 인근에는 '할랄 푸드 트럭'이 등장했다.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후무스', 양고기와 소고기, 닭고기 케밥 등 10여 가지 메뉴를 선보이자, 중동 사람들이 앞다퉈 푸드 트럭을 찾고 있다.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레바논인 하마다 엘미르(40)씨와 아내 최정숙(35)씨는 "첫날 20~30인분 준비한 게 1시간 만에 동나서, 이제 100인분 이상을 준비해 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