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스스로 믿는 대로 된다.'
리우올림픽에서 사상 첫 전관왕(남녀 개인·단체 4부문)을 노리는 한국 양궁대표팀은 매일 태릉선수촌 양궁장에 붙은 이 글귀를 읽고 훈련에 나선다. 1㎜ 차이에도 승부가 갈리는 양궁에서 믿음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활을 믿고 자신을 믿어야 과녁 중앙 골드링(10점)을 꿰뚫을 수 있다.
한국 양궁대표팀은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목에 걸었던 2012 런던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리우로 눈길을 돌렸다. 대한양궁협회와 현대자동차 연구소, 한국스포츠개발원(KISS)의 첨단 과학을 총동원한 '양궁 전관왕 프로젝트'는 그때 시작됐다.
지난달 터키월드컵을 앞두고 양궁대표팀 6명의 활은 일제히 X선 비파괴검사(물체를 부수지 않고 내부의 결함을 확인하는 검사)를 받았다. 산업 현장이나 병원에서 쓰이던 X선 검사가 양궁으로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이를 통해 육안으로 볼 수 없던 미세한 균열과 접착 불량을 발견해 활의 날개와 몸체 등을 교체할 수 있었다.
활의 기본 재질인 나무는 고온과 습기에 약하다. 이 때문에 고온다습했던 2008 베이징올림픽 때 여러 선수의 활이 부러지는 일이 있었다. 이번 리우의 기후도 그때와 비슷하다. 지난해 9월 프레올림픽 당시 리우를 방문했던 대한양궁협회 관계자는 "리우의 연간 평균 습도는 약 80%로 매우 높다"며 "활이 변형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고 했다. 하지만 이젠 비파괴검사를 통해 미리 활의 결함을 확인하고 조치할 수 있게 됐다.
활 손잡이 부분인 '그립' 제작에는 3D 프린터를 동원한다. 보통 선수들은 기존 그립(나무 재질)을 깎거나 점토 등을 덧대서 자신의 손에 꼭 맞게 만든다. 선수마다 손가락 길이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소모품인 그립은 교체가 잦은데, 그때마다 이전 것과 똑같이 만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3D 프린터로 이전 그립을 완벽하게 복제한다. 그립에 난 1㎜ 크기 흠집까지 재현할 수 있다. 남자 대표팀 이승윤(21)은 "활을 잡는 왼손은 우리에게 가장 예민한 부위"라며 "손에 딱 맞는 그립을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불량 화살을 걸러내기 위한 '슈팅머신'도 새로 도입됐다. 70m 거리에서 기계로 한 화살을 수차례 쏜 후, 일정한 탄착군(5㎝ 이내)을 형성하는 정품만 선별해 낸다.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전무는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객관적 데이터가 있는 장비를 사용함으로써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감도 함께 커지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결국 활은 사람이 쏜다. 선수들의 심리 훈련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 주 2회 뇌신경훈련(뉴로피드백)을 진행한다. 이 훈련은 실내에서 이뤄지지만 실제 경기장에서 활을 쏘는 듯한 배경음이 흘러나오고, 선수는 활을 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이때 선수의 뇌파를 분석한다. 집중력이 높을 땐 안정적인 뇌파가 형성된다. 파장이 불규칙해지면 다시 집중할 수 있도록 선수에게 신호음을 보낸다.
김영숙 한국스포츠개발원 선임연구원은 "반복적인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스스로 집중력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양궁 대표팀은 평상시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한 스마트폰 게임도 한다. '활쏘기'나 '공 띄우기' 등 대표팀을 위해 제작된 특별 슈팅 게임이다. 자신의 스마트폰과 뇌파 측정 장치를 연결시키고 '공 띄우기' 게임을 하다가 집중력이 흩어지면 공이 바닥에 떨어져 금방 알 수 있다. 문형철 양궁대표팀 총감독은 "매일 오전 훈련 전 20분씩 모바일 게임으로 워밍업을 한다"며 "리우 현지에 가선 휴식 시간에도 수시로 게임을 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