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다. 초대 재무장관으로 중앙은행을 만들고 경제의 초석을 다졌다. 미 헌법의 기초자(起草者)이기도 하다. 덕분에 10달러 지폐 속 인물로 대접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엔 그늘이 있었다. 출신 때문이다. 평생 맞수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건국 아버지들' 중엔 출신지가 달라도 힘깨나 쓰는 집안 출신이 많았다. 해밀턴은 달랐다.
▶서인도제도는 북미 대륙 밑 카리브해에 있다. 거기 작은 점처럼 연결된 남부 섬들이 '앤틸리스열도'다. 이 열도의 북쪽 섬들을 리워드제도라고 하는데 이 중 두 섬을 묶어 33년 전 독립한 나라가 '세인트키츠네비스연방'이다. 경기도 고양시만 한 땅에서 지금 강원도 태백시 수준인 5만4000명이 산다. 미주 대륙에서 가장 작고 가장 늦게 홀로 선 나라다. 해밀턴은 여기서 태어났다.
▶당시 그곳은 영국 식민지였다. 남편이 못마땅해 섬으로 도망 온 프랑스계 여인이 영국계 소상인 남자와 동거하다 낳았다. 얼마 후 해밀턴의 아버지는 도망갔다. 어머니는 그가 열 살 때 숨을 거뒀다. 유산도 못 받았다. 하지만 그에겐 인내와 성실, 도전적 글과 말솜씨, 탁월한 정치력이 있었다. '낙도(落島)의 알거지'에서 '미국의 아버지'로 성장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세인트키츠네비스를 아는 사람들은 얼마 안 된다. 해밀턴도 고향을 그다지 언급하지 않았다. 왕년의 단거리 육상 스타 킴 콜린스가 세상에 이곳을 알린 거의 유일한 국민일 것이다. 독립 후 백인이 사라지고 사탕수수 농장에 끌려 온 흑인 노예의 후손이 국민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문이 남지 않아 이제 사탕수수 농업은 파산 지경이다. 갱들이 설쳐 치안은 불안하다. 그런데 이 나라 국민이 되겠다고 제 발로 국적(國籍)을 얻은 한국인이 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처제라고 한다.
▶요즘 이 나라의 중요한 돈벌이가 국적 장사다. 25만달러를 예금하거나 40만달러를 투자하면 국적을 준다. 인터넷 공간에 브로커가 판을 친다. 방문도, 의무 체류도 필요 없다. 카리브해 낙도로 떠나 자식을 해밀턴처럼 키우겠다는 맹모(孟母)의 당찬 결의인가. 물론 그럴 리 없다. 몇 년 전 남미 온두라스 위조 여권으로 자녀를 국내 외국인 학교에 넣었다가 걸렸던 사람이다. 이번엔 아예 다른 국적을 얻어 자식을 다시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켰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새 조국' 세인트키츠네비스가 어디쯤 붙어 있는지 알기나 할까. 우 수석 처제 덕분에 세상 별별 나라 공부를 다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