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점심시간 서울 여의도 한 대형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김모(31)씨는 동료 직원과 함께 회사 근처 한 분식집에서 10분 만에 점심을 해치웠다. 김씨는 이어 맞은편 건물 지하에 있는 한 룸살롱을 찾았다. 룸살롱에 들어서자 종업원이 5번 방으로 안내했다. 4번 방까지는 문 앞에 이미 '재중'이란 표시가 붙어 있었다.

방 안에는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소파와 유리잔이 여러 개 놓인 테이블, 노래방 기기가 있었다. 여종업원이 들어와 "따뜻한 커피, 아이스 커피, 아이스티, 사이다, 녹차 있어요"라며 주문을 받았다. 모든 음료는 5000원. 선불로 현금만 받는다. 김씨 일행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 뒤 소파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12시 40분쯤 일어난 두 사람은 옷차림을 정돈한 뒤 사무실로 돌아갔다.

점심시간 '주간 커피'를 파는 서울 여의도 룸살롱엔 낮잠 자러 오는 증권맨들이 많다.

증권사들이 모여 있는 서울 여의도 회사원들 사이에 최근 노래방과 가라오케, 룸살롱의 '주간 커피'가 유행이다. 저녁 장사를 하는 곳에서 점심시간에 반짝 영업으로 커피를 파는 것이다. 오전 11시 30분부터 두 시간만 문을 연다. 손님이 2인 이상이면 방 하나를 얻어 음료를 마실 수 있다.

노래방에서 '주간 커피'를 종종 마신다는 임모(28)씨는 "여의도 커피 전문점들은 대부분 테이크아웃 점포이거나 사람이 너무 많아 앉아서 쉴 수 있는 곳 찾기가 어렵다"며 "커피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조용한 장소에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담배도 피울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가격"이라고 말했다. 점심시간 직후부터 손님이 차기 시작해 좀 늦게 가면 자리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여의도엔 증권사 수십곳이 몰려 있는데 이곳 직원들의 출근 시간은 평균 오전 7시다. 주식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 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늘 잠이 부족한 이들이 밥 먹고 한숨 자기 위해 이런 업소를 찾는다. '주간 커피' 영업을 하는 한 노래방 업주는 "점심에 커피를 파는 술집은 여럿 있지만 노래방처럼 밀폐된 곳에서 판매하는 건 여의도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룸살롱 주간 커피'를 찾는다는 증권 브로커 최모(32)씨는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에서 도시락을 포장해서 룸살롱에 간다"며 "커피를 마신다기보다 밥 먹고 누워서 쉬려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