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옥중화'의 명종(위·서하준), '밤을 걷는 선비'의 홍문관 부제학인 김성열(이준기) 모두 수염이 없다.

조선 명종조. 궁궐 침전에 임금(서하준)이 앉아 있다. 약관의 나이지만 입가가 여자처럼 깨끗하다. 포도청 종사관(최태준) 역시 턱 주변에 터럭 한 올 없다. 한양상단의 우두머리(고수)도 별반 다르지 않다. MBC 사극 '옥중화'의 등장인물 면면이다.

사극에서 수염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종영한 SBS '육룡이 나르샤'(유아인), 방영 예정인 KBS '구르미 그린 달빛'(박보검)까지 남자 주인공에게 '신체발부수지부모'는 먼 옛날얘기가 됐다.

수염 부착, 고통 시작

"장군, 왕 역할 들어와도 다 거절했어요. 수염 붙이는 게 너무 싫었어요." 지난 5월 SBS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에 출연한 배우 김수로가 말했다. 배우들이 사극을 기피하는 큰 이유로 '수염 분장'이 꼽힌다. 사극전문배우로 유명한 안재모마저 "내시 역할을 할 때 수염 분장을 안 해서 정말 좋았다"고 말했을 정도. 수염을 붙이는 데만 30분 이상이 소요되는 데다, 식사 시간도 고역이다. 수염 분장은 스피릿검(Spirit gum)이라는 송진·알코올 용해 약품을 바른 뒤, 그 위에 아크릴 실(Kanekalon)을 한 올 한 올 붙이는 식이다. 성분이 독해 피부트러블이 잦고, 잘못 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 한 방송 관계자는 "수염 분장은 떼는데도 30분 정도 걸린다"면서 "수염이 줄면 준비 시간도 확실히 짧아진다"고 말했다.

고증보다 로맨스, 외모를 보호하라

꽃미남에게 수염은 허락되지 않는다. 지난 14일 종영한 SBS '대박' 남건 PD는 "주인공을 맡은 장근석의 얼굴이 수염 때문에 가려지는 것 같아 뗐다"면서 "장근석은 멜로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평소 (곱상한) 이미지와 맞지 않았다"고 했다. 하반기 방영 예정작인 KBS '구르미 그린 달빛'(박보검) '화랑:더 비기닝'(박서준) SBS '보보경심:려'(이준기) 등도 남자주인공의 수염을 생략했다. 3월 종영한 KBS '장영실' 등 정통 대하사극에선 여전히 고증을 중시하지만, 최근 사극이 정극 대신 '팩션'을 택하면서 로맨스 비중이 늘었고 여성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수염을 배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3년째 분장업무를 맡고 있는 MBC 이명재 팀장은 "수염을 달고 러브라인을 형성하면 싱그러움이 떨어진다"며 "극 중 캐릭터의 나이가 많아지더라도 수염이 없는 걸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배우 임슬옹은 영화 제작발표회장에서 "이번 사극에선 수염을 안 붙여 다행이다. 외모가 나쁘지 않아서 좋다"고 털어놨다. 영화 속 분장을 맡은 정미경 분장실장은 "요즘 사극 주인공은 대부분 미소년 스타일인데 수염을 붙이면 확 늙어 보인다"고 말했다.

女心 잡았지만 시청률 글쎄

시청률에는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옥중화'는 시청률 10% 중·후반대를 오가고 있다. 시청률 20%를 웃돈 전작 '계약결혼'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는 수치. '대박'은 동시간대 꼴찌로 종영했고 '밤을 걷는 선비' 역시 시청률 10%를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드라마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엄격한 고증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선은 있다"며 "사극 장르의 고유 느낌을 기대하는 시청자는 황당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