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7곳 주관으로 국립과학문화관(미래창조과학부), 국립여성사박물관(여성부), 아리랑무형유산센터(문화재청), 국립경찰박물관(경찰청), 국립어린이아트센터(문화체육관광부), 용산공원 스포테인먼트센터(문체부), 호국보훈 상징 조형광장(국가보훈처), 아지타트 나무 상상 놀이터(산림청) 등 박물관과 문화 시설 8개를 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지가 국회 윤종필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용산공원 기획안에 따르면 국토부가 실시했다고 밝힌 대국민 설문조사는 지난해 9월 30일부터 한 달간 국토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와 국토부 및 용산공원추진단 홈페이지를 통해 이뤄졌다. 전쟁기념관 방문객 등 같은 설문조사에 직접 응한 일부 시민까지 포함, 응답자는 3434명이었다. 1000만 서울 시민의 0.03%만이 의견을 밝힌 것이다. 콘텐츠 관련 설문은 '용산공원에서 경험하고 싶은 프로그램' '용산 공원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설' 단 두 개였다. 71만평이나 되는 거대 공간 활용을 놓고 대면(對面) 접촉이나 전화 조사, 심층 조사도 하지 않았다.
국토부가 민간·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같은 기간 진행했다는 콘텐츠 수요조사는 철저히 '공급자 중심'으로 진행됐다. 용산 공원에 들어설 콘텐츠를 응모한 기관은 모두 9개였다. 이 중 민간 기관은 단 한 곳이었고, 나머지 8곳은 정부 부처였다.
이들이 제출한 18개의 콘텐츠를 대상으로 용산공원 콘텐츠 소위원회(위원장 조세환)의 검토가 이뤄졌고, 그 결과 7개 부처가 8개 시설을 짓기로 했다. 평가에 참여한 한 위원에게 "경찰박물관이 왜 용산공원에 들어가야 하느냐"고 묻자 "공원 치안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경찰박물관도 필요하겠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문화계는 이에 대해 "형식적 조사와 심의를 거쳤을 뿐 실제로는 정부 기관들이 각자 필요한 시설을 써내게 해서 골라 뽑은 것"이라며 "몰역사적이고 비전문적인 부처 간 나눠 먹기식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용산기지 육본 벙커, 이곳서 6·25때 한강다리 폭파 결정했다
美軍기지 내 보존가치 큰 건물 80여동… 우리가 미처 몰랐던 숨겨진 역사의 땅
1882년 임오군란을 빌미로 청(淸)나라 군대가 한양 주변 4곳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지금의 용산 기지 메인 포스트의 캠프 코이너 자리인 청군의 사령부로 끌려왔다가 동작진에서 배에 실려 청으로 압송됐다. 구한말엔 둔지미 마을 등 주민 거주지와 청국 병영이 혼재돼 있던 용산은 1906년 일본에 의해 완전히 외국 군사 기지로 변했다.
대원군 납치 사건을 비롯해 용산 기지에는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거나 숨겨져 있는 역사적 사실이 적지 않다. 사우스 포스트 남서쪽 121병원 뒤편 언덕에 있는 노란색 건물이 대표적이다. 계단이 외부로도 나 있고 외형은 보편적인 직각 육면체가 아니라 사다리꼴이다. 언뜻 봐도 평상적인 사무실 건물이 아니다. 현재 건물 이름은 사우스 포스트 벙커다. 아스팔트 도로 건너편 잔디밭에는 미군 단독주택 관사가 서 있다. 그 뒤편 숲 덤불 속에는 녹슨 철문이 있다. 숲 뒤편 콘크리트 담장으로 연결된 터널 입구다.
관사가 있는 잔디밭에는 일본군 사령부 청사가 있었고 121병원 자리에는 조선총독 관저가 있었다. 터널은 사령부와 총독 관저를 잇는 지하 터널이었다. 사령부청사는 6·25 때 파괴됐다. 총독 관저는 1960년대 병원 신축으로 철거됐다. 노란색 벙커는 일본군 사령부 작전실이었다. 사령부와 작전실은 광복 후 한반도에 들어온 미7사단이 접수해 사무실로 사용했다.
1882년 임오군란을 빌미로 청(淸)나라 군대가 한양 주변 4곳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지금의 용산 기지 메인 포스트의 캠프 코이너 자리인 청군의 사령부로 끌려왔다가 동작진에서 배에 실려 청으로 압송됐다. 구한말엔 둔지미 마을 등 주민 거주지와 청국 병영이 혼재돼 있던 용산은 1906년 일본에 의해 완전히 외국 군사 기지로 변했다.
대원군 납치 사건을 비롯해 용산 기지에는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거나 숨겨져 있는 역사적 사실이 적지 않다. 사우스 포스트 남서쪽 121병원 뒤편 언덕에 있는 노란색 건물이 대표적이다. 계단이 외부로도 나 있고 외형은 보편적인 직각 육면체가 아니라 사다리꼴이다. 언뜻 봐도 평상적인 사무실 건물이 아니다. 현재 건물 이름은 사우스 포스트 벙커다. 아스팔트 도로 건너편 잔디밭에는 미군 단독주택 관사가 서 있다. 그 뒤편 숲 덤불 속에는 녹슨 철문이 있다. 숲 뒤편 콘크리트 담장으로 연결된 터널 입구다.
관사가 있는 잔디밭에는 일본군 사령부 청사가 있었고 121병원 자리에는 조선총독 관저가 있었다. 터널은 사령부와 총독 관저를 잇는 지하 터널이었다. 사령부청사는 6·25 때 파괴됐다. 총독 관저는 1960년대 병원 신축으로 철거됐다. 노란색 벙커는 일본군 사령부 작전실이었다. 사령부와 작전실은 광복 후 한반도에 들어온 미7사단이 접수해 사무실로 사용했다.
네티즌에 조사한 '용산공원 활용방안' 질문은 2개 뿐
황당한 對국민 설문조사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용산 미군기지 부지(약 235만㎡)를 국가공원으로 만들면서 7개 정부 부처 주관으로 8개의 박물관·문화시설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그 근거로 '대(對)국민 설문 조사와 민간 및 공공 기관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 수요 조사'를 제시했다.
본지가 윤종필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설문 조사는 지난해 9월 30일부터 10월 31일까지 3434명을 대상으로 국토부 SNS와 국토부·용산공원 홈페이지 등을 통해 진행됐다. 이 중 콘텐츠와 관련된 질문은 단 두 개였다. '용산국가공원에서 경험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무엇입니까?' '용산공원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설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등이었다. '용산공원에서 경험하고 싶은 프로그램'에 대한 답은 ①역사 교육 ②야외 전시·감상 ③실내 기록·전시 ④생태 교육 ⑤스포츠 ⑥휴식·휴양 등 11가지 중 5개를 복수 응답하도록 했다. 휴식·휴양을 꼽은 답이 70%로 가장 많았고, 생태 교육(58%), 역사 교육(54%) 순이었다.
'용산국가공원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설'을 묻는 문항엔 ①기념관 ②박물관 ③도서관 ④영화관 ⑤동물원 ⑥생태체험관 등 21가지를 들고 5개까지 복수로 고르게 했다. 답변은 공원역사관(45%), 기념관(42%), 생태체험관(42%), 박물관(40%) 순이었다.
여론조사 전문가는 "전화 면접원 조사나 면접원 방문 조사 등 대표성 있는 표본을 대상으로 실시한 게 아니라 SNS나 온라인을 활용한 조사는 정책 결정의 참고 자료로 적합하지 않고, 10~20개 보기 중에서 5개씩이나 선택하라는 것은 정확한 의견 수렴이라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 막연한 설문 조사 결과가 어떻게 경찰박물관, 여성사박물관을 세우는 근거로 이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민간·공공 기관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 30일부터 한 달간 진행했다는 콘텐츠 수요 조사 역시 공원을 이용할 국민의 필요와는 무관한 '공급자 중심의 조사'였다. 경찰청이 용산공원에 국립경찰박물관이 들어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박종철 기념관과 가까워 과거 경찰의 과오를 반성할 수 있는 장소로 의미가 충분하다"고 써낸 식이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실제로 누리고 싶고, 보고 싶은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공급자 중심으로 나눠 먹기 하는 식"이라며 "박물관은 부처 홍보관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美軍 용산기지 실질적 반환은 2018년 이후
SOFA 따라 환경조사 등 거쳐야
서울 용산의 미군 기지는 2017년 말까지 모두 경기 평택 기지로 옮겨간다. 그러나 용산 기지가 우리 국민에게 공개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4일 "미군이 용산 기지를 떠나도 행정 절차가 남아 있어 실질적인 반환은 2018년 이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용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한 다음 국방부는 미군 측과 SOFA시설구역 분과위원회를 열고 반환되는 용산기지 시설과 면적 등을 조사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후 환경부와 미군이 SOFA 환경 분과위원회를 열어 기지 내 토양오염 등 환경 조사에 들어간다. 이런 절차가 마무리되면 SOFA 합동위원회에서 기지 반환을 최종 승인하게 된다.
국방부는 2018년까지 용산공원 설계 및 조사를 끝내려는 국토교통부의 계획에 맞춰 기지 반환 절차를 최대한 서두른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2019년부터 용산 기지 일대 토양 정화 작업을 시작하고, 기지 내 각종 근대 유산들에 대한 문화재 조사를 실시한다. 2022년부터는 본격적인 공원 조성에 들어가 2027년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