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가들은 듣는 이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3인조 밴드 '잠비나이'가 그렇다. 얼핏 들으면 전자기타와 드럼을 기본으로 하는 헤비메탈 밴드 같다. 하지만 그걸 이끌고 받치는 건 거문고, 해금, 태평소 같은 국악기다. 분명 세상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음악이다.
지난 17일 발매된 잠비나이의 두 번째 앨범 '은서(隱棲)'는 그 신세계를 들으러 갈 좋은 기회다. 앨범명(名) '은서'는 숨어 사는 사람의 거처란 뜻이다. 숨어 있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음악이 나타났다는 뜻이라고 한다. 첫 곡 '벽장'과 두 번째 곡 '에코 오브 크리에이션(Echo of Creation)'은 이 앨범의 강력한 원투 펀치다. 거문고와 기타, 드럼이 서로 다투듯 경쟁적으로 강렬한 소리를 내지만, 곡 전체를 리드하는 건 해금이다. 이 우아한 국악기가 이렇게 섹시한 음색을 내는 악기였나 싶다. '에코 오브 크리에이션'은 압도적인 도입부 뒤에 흐느낌 같은 코러스와 거문고와 실로폰, 드럼 소리가 차례차례 깔리는 전개, 모든 걸 폭발시키는 후렴부까지 듣는 이를 단계적으로 고양시키는 솜씨가 일품이다.
앨범의 백미는 래퍼 이그니토가 참여한 '무저갱'과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한 '그들은 말이 없다'. 두 곡 모두 분노와 좌절, 고통 같은 감정들을 음표와 박자로 옮긴 듯한 흔치 않은 노래다. 뛰어난 단편소설이 그렇듯, 짧은 시간 안에 듣는 이를 들었다 놨다 하며 낯설고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국악의 대취타를 응용한 '부디 평안한 여행이 되시길', 해금 산조를 떠올리게 하는 '그대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을 위하여' 같은 노래도 국악의 문법을 매혹적으로 변용했다. 8곡의 앨범 수록곡 각자 나름의 주제가 선명하다.
잠비나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01학번 동창생 세 명이 2010년 결성했다. 헤비메탈 밴드로도 활동했던 이일우(기타 및 태평소)는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난 심은용(거문고), 김보미(해금)와 얘기를 나누다 음악적 뜻이 맞다는 걸 알고 팀을 시작했다. 잠비나이는 국악기로 캐논 변주곡을 연주하는 식의 흔한 퓨전 국악으로 정의할 수 없는 신선한 음악을 내놓았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2013년부터 해외 음악축제에 초대되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공연하는 날이 훨씬 많을 정도다. '은서'는 작년 영국의 중견 음반사 '벨라유니언'과 앨범 계약을 맺은 뒤 세상에 내놓는 첫 앨범이다. 전 세계 100여 개국의 음반 가게에 이 회사의 이름을 달고 잠비나이 앨범이 유통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