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들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공기가 맑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공기가 드물게 깨끗한 날에도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서 마시는 공기는 건강에 치명적일 정도로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도심 곳곳을 누비는 대형 관광버스〈본지 6월 7일자 A1·4·5면 보도〉와 경찰 버스 등이 주·정차 중 공회전을 하면서 내뿜는 고농도 초미세 먼지(PM2.5)가 공기를 더럽히고 있다.

버스 뒤에 5분 있었더니 '지끈지끈'

본지 취재팀이 지난 1일 PM2.5 간이 측정기(측정 최고 농도 1000㎍)로 서울 중구 광화문과 종로 일대의 PM2.5 농도를 직접 쟀다. 당시 중구의 일평균 PM2.5 농도는 WHO(세계보건기구) 기준 ㎥당 25㎍보다 낮은 22㎍, 종로구는 이보다 더 낮은 19㎍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낮 시간, 가장 붐비는 도심의 실제 PM2.5 농도는 이보다 크게는 10배 이상 치솟았다.

서울 경복궁 주차장에서 7일 종로구청 직원들이 공회전하는 관광버스들을 단속하고 있다. 일부 운전기사는 “날씨가 더워 에어컨을 켜두지 않으면 관광객들이 불평하고, 내가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고 말했다. 종로구에는 하루 1500여대의 버스가 드나들지만 공회전 단속 인력은 6명밖에 없다.

이날 오후 2시 관광객 전세 버스가 많이 몰리는 광화문 사거리 면세점 인근 도로에 전세 버스 여섯 대가 주·정차 중이었다. 공회전 중인 전세 버스 바로 뒤에서 측정기를 켜자 PM2.5 농도가 180~260㎍ 사이를 오르내렸다. WHO 기준보다 7~10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 측정기는 한 자리에서 최소 5분 이상 측정해야 정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배기구 뒤에 5분 넘게 서 있었더니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근처 상점의 주차 안내 요원은 "버스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 때문에 고통스럽다"면서 "마스크를 쓰고 싶지만 고객들을 맞이해야 해서 얼굴을 가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세 버스가 30대가량 몰려 있는 경복궁 주차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공회전하는 버스 뒤 배기구 1m 이내 거리에서 재보니 PM2.5 농도가 200㎍을 훌쩍 넘겼다. 주차장을 나와 도로변에서 약 10m 떨어진 인도에서 잰 농도는 60~80㎍까지 떨어졌지만 그래도 WHO 기준치의 2~3배 수준, 국내 기준치보다는 10~30㎍이나 높았다. 하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삼청동 골목에서는 10㎍ 이하로 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경희대 김동술 교수(환경학과)는 "1㎥당 60㎍ 정도의 PM2.5를 장기간 매일 들이마시면 중금속을 비롯한 각종 유해 물질이 쌓여 치명적일 수 있다"면서 "특히 실외에서 근무하는 경찰관과 주차 요원, 노점상 등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회전 단속해도 '실효성 의문'

공회전 버스들이 PM2.5를 많이 배출하고 있지만 당국의 단속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기자가 종로구청의 공회전 차량 단속에 동행해보니 광화문광장부터 삼청동을 거쳐 창의문에 이르는 약 2.5㎞ 구간에서 차량 30대 이상이 공회전을 하다 적발됐다. 대부분이 관광버스였다.

[[키워드 정보] 초미세먼지란 무엇인가]

규정대로라면 5분 이상 공회전하는 차에 과태료 5만원을 물려야 하지만 이날 구청은 단 한 건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았다. 매일 단속을 나오는 구청 직원은 "공회전 차를 하루에도 20~30대씩 적발하지만 '지금 막 시동을 끄려던 참이었다'거나 '곧 출발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발뺌한다"며 "실제로 과태료를 부과하려 하면 욕설은 기본이고 몸싸움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공회전 운전자를 처벌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종로구에는 관광버스가 하루 평균 1500대 드나들지만 공회전 단속 인력은 6명뿐이다. 종로구청은 올해 들어 공회전 위반으로 딱 1건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날 서울시 25곳에 설치된 측정망의 일평균 농도는 22㎍으로 지난 5월 19일 이후 PM2.5 농도가 가장 많이 떨어진 날이었다. 이 때문에 서울 시민들 사이에선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맛본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대형 버스가 많고 혼잡한 도심의 실제 농도는 이런 정부와 지자체의 공식 관측치를 훨씬 웃돈 것이다. 김신도 서울시립대 교수는 "시민들이 매일 실제로 들이마시는 PM2.5의 농도는 공식 측정망에서 발표되는 수치보다 훨씬 높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고농도 오염 물질이 발생하는 위험 지점에 따라 정확한 대기오염 정보를 제공해 시민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