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언주로 한 빌딩이 두 여인 왁자한 웃음소리로 휘청댔다. 디자이너 손정완(58), 배우 최화정(55)이 쓰나미급 입담을 펼쳤다. 30년 넘은 절친이라더니, 척하면 척이다. 침묵 한 줌 끼어들 틈이 없다. 장난치고 놀리며 눈을 흘기면서도 서로를 "내 인생 최고의 명품"이라 추켜세운다. 강남 신부(新婦)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예복으로 첫손에 꼽는 손정완(이하 손)과 '완판녀'란 애칭이 따를 만큼 연예계 패셔니스타로 소문난 최화정(이하 최)의 "터프하고 끈끈한" 우정 스토리다.

두 여인 맺어준 한 남자 있다던데?

=대학 2학년 땐가? 화정이 사귀던 남자가 우리 남편 베프(베스트프렌드)였다. 두 남자와 초등 동창인 내가 얼떨결에 엮인 거고.

=어우, 그 얘긴 뭐하러? 됐고, 그 사람과는 바로 헤어졌는데 언니와는 평생을 같이 왔다는 게 중요하지.

=친구도 없고 사람 잘 안 만나는 내게 화정인 속마음 다 털어놓는 유일한 친구다.

=언니는 '스따'다. 스스로 왕따. 암튼 둘이 되게 비슷하다. 치사한 거 싫어하고 예쁜 거, 맛있는 거 좋아하고. 압구정에서 스포츠카 몰고 다니는 남자 보면 "저게 저 남자 전 재산일걸?" 이러면서 놀린다.

=시답잖은 남자들 만나느니 둘이 만나 웃고 떠드는 게 더 재밌었다. 일 끝나면 거의 매일 만나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둘 다 술은 한잔도 못하는데, 술 취한 사람들보다 더 잘 놀았다.

손정완은 달콤, 최화정은 터프?

=디자이너가 빡센 직업인데, 언니는 가정도 극진히 보살피더라. 권위의식도 없다. 보통 목소리 쫙 깔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하는데, 손정완은 소탈하고 캐주얼하다. 진짜 프로다.

=화정이는 유니크하다. 자기 스타일링부터 집 꾸미는 거, 사고방식까지. 트렌드 허겁지겁 따라가지 않고, 확실한 자기 취향에 새로운 걸 접목해서 연출한다. 통 크고 유머러스한 대인배? 단점은 현실감각 없다는 거. 특히 결혼문제에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남자 보는 눈도 없다. 너무 이상한 남자를 막 쫓아다녀서 내가 몇 번을 구제했는지 모른다.

=남자 보는 눈이 왜 없나? 나는 일단 끌리면 만난다. 결혼이란 게 니즈(필요)에 의해서 결심하는 게 아니잖나? 끌려야지. 자기는 죽고 못 살아서 결혼해놓고, 나더러는 벼랑 끝에 서서 결혼하란다. 손정완 단점? 그저 자기 남편, 자기 아들밖에 모르는 거! 자기도 안다. 집에 큰일 있을 때 찾아올 사람 없을 거라고 만날 걱정이다.(웃음)

서로의 스타일에 점수를 매긴다면?

최=옛날엔 언니 옷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예복이라 "언니 옷은 왜 이래?" 이러면, "넌 뚱뚱해서 입지도 못해 이것아" 이러며 싸웠다. 지금은 딱 봐도 손정완이란 아이덴티티가 느껴져 참 좋다.

=화정이는 너무 우아한 스타일만 추구해서 탈이지. 가끔은 흐트러졌으면 좋겠는데. 파격도 가하고.

=언니가 원래 아방가르드했다! 예전엔 브리짓 바르도처럼 산발을 하고 끈 하나 달린 옷에 총알 굽 신고 다녔다.

=태닝한 것처럼 어두운 파운데이션에 은색 립스틱을 발랐더니 쟤가 "언니, 차 배달하러 가?" 하더라.

=언니 지적이 맞다. 명색이 배우인데 변신을 못하고 항상 똑같으니. 스타일리스트를 써도 90%는 내 옷 입고, 10%만 스타일리스트 옷 입는다. 100만원을 준대도 남의 옷은 못 입겠다. 심지어 옷장에 25년 전 입은 코트도 있다. 그런 게 좋다.

언니들의 10대는 행복했을까?

=규칙적인 생활 너무 힘들었다. 물리, 지학, 화학도 배우고, 영어 하나 배우기도 힘든데 한문도 배우란다. 가장 끔찍했던 건 교복! 머리에 핀 꽂고 다니는 거 완전 싫었다. 거기다 사교성도 없으니 불행한 10대였지. 엄마 덕분에 삐뚤어지지 않은 것 같다. 공부하라고 막 다그쳤으면 죽고 싶었을 텐데, 딸 이상한 거 아는 엄마가 병원에서 가짜 진단서 떼어다 한 달씩 학교 안 가게 해주셨다.

=나는 룩(외모)이 되니까 언니처럼 반항은 안했는데, 자존심은 셌다. 아빠가 야단치면 내 동생은 무조건 싹싹 비는데 나는 고개 빳빳이 들고 있다가 한대 더 맞았지. 10대에는 부모님 역할이 진짜 큰 것 같다. 언니가 수현(외아들)이 키우는 거, 우리 조카만 봐도 그렇고. 부모가 믿어주는 거, 모른 척 해주는 거. 그게 훨씬 더 큰 울림을 준다.

=견뎌야 한다. 엄마도, 자식도. 세월이 약이란 말처럼 아이가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견딜 시간과 힘을 주어야 하는데 그걸 빨리 앞당기려 하니 사이만 나빠진다.

=거울 앞에 돌아온 누님처럼 온화하고 평화로우면 10대가 아니지. '이럴 거면 왜 낳았냐' '인생이 뭐 이래' 하고 대들어야 10대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

=엄마 돌아가셨을 때라고 하면 너무 평탄한 걸까? 일 때문에 힘든 적은 별로 없었다.

=화정이는 저녁밥만 맛있으면 낮에 어떤 절망스러운 일이 있었어도 다 잊어버린다, 하하!

=큰 성취도 없지만 큰 요동도 없었다. 결혼 못한 거? 음~ 엄마도 생전에 이상한 남자 만나느니 준이(애완견)랑 재밌게 살라고 하시더라. 나이 50 넘어 남자 만난다는 게 겁도 난다. 20, 30대에 만나면 역사가 생기지만 너무 늦게 만나면 그런 게 없지 않나. 실망하면 참을 이유도 없어지고.

=우리만 해도 어릴 때 만나 티격태격하며 끈끈하게 굳은 역사가 있는 거지. 1년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레즈비언 소리까지 들었으니, 하하! 이게 여자들 우정인가 싶다.

디자이너, 배우 지망생에게

=미치도록 좋아야 하는 일! 인내력도 필요하지만 최첨단 흐름을 알아채는 안테나도 필요하다. '개콘'부터 '태양의 후예'까지 대중들 좋아하는 건 다 봐야 한다. 패션과 아트는 트렌드가 같다. 게으름 피우다 고객의 요구를 못 읽으면 한방에 훅 간다. 파도 타는 서퍼처럼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배우는 남과는 다른 자기만의 매력을 파는 사람이다. 최고이기보다는 유일해야 한다. 연기든 스타일이든. 누구 닮았다는 말은 아무 소용 없다. 그러려면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나는 전지현이 아니고 장윤주가 아니라는 걸 빨리 깨달아야 한다. 근데, '우리 만난 지 30년 넘었다' 같은 말은 빼달라. 누가 들으면 둘 다 환갑 넘은 줄 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