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0일 오후 충북 청주시 사창동 한 아파트 단지 내 50m 높이의 굴뚝 꼭대기에 이모(37)씨가 상의를 벗은 채 서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인근 주민의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이 옆 건물 옥상에 올라가 이유를 묻자 이씨는 "아들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때문에 법원으로부터 아내와 아이에게 접근 금지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경찰·소방관 30여 명이 출동해 에어매트를 깔고 대기했고, 인근 주민들도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이씨는 그 전날에도 다른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소동을 피웠었다. 3시간여 만에 경찰의 설득으로 내려온 이씨는 '인근 소란'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져 벌금 10만원을 선고받았다.
자살소동이나 고공시위에 대한 현행법상 처벌이 충분한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때때로 통행에 불편을 초래함에도 보통 경범죄로 분류돼 그 처벌 수위가 노상방뇨나 구걸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경찰관계자는 "이씨 같은 경우 현행법상 구류(경찰서 유치장에 가두는 것) 선고도 가능하지만 판사가 벌금형을 내리고 풀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3·4월 두 차례 서울 양화대교 위 아치형 구조물에 올라 총 11시간여 동안 '해고자 복직' 현수막을 펼치고 농성을 벌여 교통체증을 유발한 김모(60)씨도 '불법 현수막 부착'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은 이에 대해 딱 맞는 처벌 규정이 없어 단속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만약 소란을 피우는 과정에서 흉기를 들고 남을 위협하거나 건물 안에서 분신(焚身)을 시도한다면 관련 형법·특별법을 적용하겠지만, 자살 소동 자체는 제재 규정이 없어 시민을 괴롭히면서도 법망을 피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범죄 항목인 '인근 소란'도 원래는 시끄럽게 음악을 틀거나 고성방가하는 걸 염두에 둔 조문인데 일종의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끌어다 쓴다고 했다. 특정 상대에게 현실적인 공포를 초래하지 않으면 협박죄가 성립할 가능성도 작다. 투신 기도자 설득을 담당하는 경찰청 위기협상팀 관계자는 "자살·자해 소동을 별도의 항목으로 처벌하는 규정이 신설되면, 자기주장 관철을 위해 상습적으로 극단적 방법을 쓰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법조인·법학자들은 대부분 처벌 강화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형사 처벌은 타인이나 공공의 법익이 침해됐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서 가능한 것인데, 다소 소란을 일으켰다고 해서 자살 미수(未遂) 격의 행위를 처벌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지은법률사무소 이지은(33) 변호사는 "공개 자살을 감행하는 사람은 절박감에 합법의 경계선까지 자신을 내던진 것"이라며 "처벌보다는 관심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라고 말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자살 시늉으로 남의 영업을 방해했다면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성립하겠지만, 사람의 짜증을 유발하고 행정력을 다소간 소비했다고 처벌하자는 건 법리상 맞지 않다"고 했다. 이동희 경찰대 법학과 교수도 "(처벌 규정을 신설하면) 현행 집시법상 광범하게 가능한 1인 시위가 단속되는 엉뚱한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벌의 억지(抑止) 효과에 대해 심리학자들의 의견은 갈렸다. 임영진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는 "범죄화가 가능하냐는 논의가 선행돼야겠지만 (처벌이 강화되면) 자살 소동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소장(정신과 전문의)은 "자기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곳에 올라가거나 흉기로 자해하는 사람을 형벌로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비난 대상을 더욱 더 외부에서 찾게 돼 본격적인 범죄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소동을 벌이는 동기에 집중했다. 회사원 정모(31)씨는 "피해망상 같은 정신질환이나 극도의 절박감으로 인한 해프닝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다른 선전 목적을 위해 자살을 빙자해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이라면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부 엄모(60)씨는 "투신자살 위협소동이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면 시청하는 아이들에게 '목숨도 수단'이라는 생각을 심어줘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며 "목적이 불순하다면 벌금 몇 푼 내게 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교화시설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