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낮 전남 강진군 읍내 강진시장 옆에 있는 오감통(五感通) 음악창작소 2층에서는 성인가요 가락과 친숙한 냄새가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음악교실에 참가한 노인 40여 명이 실내 공연장에 모여 앉아 "내 나이가 어때서~" 하는 노래를 합창하는 사이, 바로 앞 휴게실에서는 라면 냄새가 새 나왔다. 장용석(52) 오감통 예술감독이 그 방을 들여다보며 "라면 말고 밥 좀 먹어!"라고 눈을 흘겼다. 젓가락질에 열중하던 노랑·주황·파랑 머리 20대 여성 네 명이 "예~" 하며 웃었다.
록밴드 '워킹애프터유(Walking After U)'는 강진에서 11개월째 머물고 있다. 드럼 아짱(22), 베이스 조민영(21), 키보드 김써니(25), 기타·보컬 백해인(22)으로 구성된 이 인디밴드 멤버 중 강진에 연고를 둔 사람은 없다. 이들은 그러나 "우리 집은 강진 오감통"이라고 했다.
2013년 4월 결성된 이 밴드는 일본·중국·대만 등 해외에서 100회 이상 무대에 올랐다. 국내 한 해 공연 횟수는 250회가 넘는다. 이들이 한적한 남해안 마을에서 생활하는 이유는 뭘까.
워킹애프터유는 작년 7월 강진에 음악창작소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강진에 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아짱은 "고가의 녹음 시설과 파격적인 대우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2013년 10월 발매한 1집 앨범 때는 녹음 비용이 1000만원쯤 들었다. 오감통에서 생활하며 5곡짜리 두 번째 음반을 만들 때는 한 푼도 들지 않았다. 샤워장과 화장실 딸린 43㎡(약 13평) 방에서 지내는데 여태 방세를 낸 적이 없다. 조민영은 "방 빼라고 하면 큰일"이라며 웃었다. 이들이 서울에서 합주할 때는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었다. 시끄럽다고 이웃 주민이 신고한 것이다. 김써니는 "방음시설이 갖춰진 강진 연습실에서는 밤 9시부터 연습을 시작한다"고 했다. 백해인은 "주변 식당에서 '예쁜 딸들 왔다'며 김치며 밑반찬을 챙겨 준다"고 했다.
강진원 강진군수는 지역의 신성장 동력으로 '음악'을 선택했다. 1999~2001년 미국 유학 시절 겪은 경험을 고스란히 군정에 적용한 것이다. 강 군수는 "1970년대 침체일로를 걷던 미국 미주리주 브랜슨시가 은퇴·무명 가수를 불러모아 '음악 도시'로 거듭난 사례를 거울삼았다"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뮤지션이 마음껏 음악을 즐기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음악창작소와 야외공연장, 야외정원, 한정식체험관, 먹을거리장터, 주차장 등을 지난해 7월 완성했다. 전체 시설·프로그램 운영비는 한 해 5억원. 핵심 시설은 숙식하며 음악을 만드는 2층 규모의 '체류형 음악창작소'다.
1층에는 연습실과 녹음실을 갖춘 음악스튜디오와 음악카페 등이 들어섰다. 녹음실에는 서울의 대형 스튜디오 못지않은 최첨단 녹음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서울에서 이런 장비로 녹음하면 한 프로(3시간 30분)에 40만원가량이 필요하다. 이곳에서는 음악 하는 사람이 아무 때나 무료로 연습하고 녹음할 수 있다. 2층에는 숙박비가 없는 방 4개짜리 게스트룸과 휴게실, 회의실, 150석 규모의 실내 공연장도 있다.
문을 연 뒤 서울·광주 등에서 온 인디밴드 10개 팀 50여 명이 이곳에서 연습과 녹음 작업을 했다. 인디밴드뿐 아니라 학교 음악동아리와 교수, 아마추어 밴드, 무명 가수 등 9000여 명이 오감통을 거쳐 갔다. 이런 열기 덕에 지난 2월 오감통 음악창작소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지원금 10억원을 확보했다. 문체부가 지원한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전국 7곳 음악창작소 중 단일 건물에 숙박시설까지 갖춘 곳은 강진이 유일하다. 임창복 강진군 음악도시팀장은 "시설 면에선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며 "강진이 '음악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임 팀장은 "앞으로 관객들이 클래식이나 가곡·대중가요·뮤지컬 등을 요구하면 우리 공연팀이 맞춤형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디밴드 트위드는 지난달 26~30일 오감통에서 숙식하며 녹음 작업을 했다. 기타 김은수(24), 베이스 손주은(24), 키보드 박찬영(22), 드럼 박은규(22) 등 4명으로 구성된 트위드는 2013년부터 작곡한 7곡을 강진에서 다시 녹음했다. 김은수는 "서울에선 총 200만원짜리 녹음 장비로 곡을 만들었는데, 강진에선 마이크 하나만 450만원짜리"라며 "좋은 장비로 녹음하니 음악에서 '돈톤'이 나온다"며 싱글벙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