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크의 꽃병, 기원전 3200~3000년, 설화석고, 높이 약 105㎝, 이라크 바그다드 박물관 소장.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배경은 가상 국가 우르크다. 하지만 실제 우르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연 수메르인이 현재의 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강 서안에 세운 도시였다.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우르크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번성한 도시 중 하나였다.

'우르크의 꽃병'은 수메르인이 숭배한 풍요와 사랑, 그리고 전쟁의 여신 이난나의 신전에서 발견됐다. 표면은 네 단으로 나뉘어 얕은 부조로 장식돼 있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사례에 속한다. 아래 두 단에는 풍요로운 곡식과 가축이 자라는 들판이 있고, 그 윗단에서는 나체의 남자들이 한 줄로 서서 바구니와 항아리에 온갖 음식을 풍성하게 담아 어딘가로 나르고 있다. 이 행렬이 도착한 곳은 제일 상단의 신전에 서 있는 여신 이난나 앞. 인간은 거구의 여신 이난나에게 공물을 바치고 있다. 고대의 관습에 따라 여신은 인간보다 더 크게 그려져 있고, 그 뒤로는 이난나의 상징인 갈대 두 묶음이 있다.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였던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전은 단지 종교적인 기관일 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 꽃병이 보여주듯 수메르인의 모든 산물은 신의 소유였기에, 작물도 우선적으로 공물의 형식을 빌려 신전에 집결된 이후, 계층에 따라 재분배되었던 것이다.

이 꽃병은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의 혼란 중에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다가 석 달 만에 되찾았다. 다행이기는 했으나, 꽃병은 이미 스무남은 개의 파편이 된 다음이었다. 드라마 속 우르크는 전쟁 중에 사랑이 꽃피는 낭만적인 곳이지만, 실제 전쟁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