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린 지난 3일 경남 창원시 평지산(해발 491m) 자락. 동네 뒷동산처럼 평범하게 보이는 잡목 우거진 숲길을 30분 정도 걸어 오르자 눈앞에 갑자기 이국적 풍경이 펼쳐졌다. 키가 20~30m씩 하늘로 쭉쭉 뻗은 곧게 자란 편백나무들이 약 30만평(축구장 100개 넓이) 되는 산자락에 1m 간격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선친(先親)과 함께 이곳에 편백을 심은 게 벌써 44년이 지났네요. 편백나무 군락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랍니다."
이 숲은 마산 출신 고 이술용(1914~1993)씨와 아들 이현규(78·사진)씨 부자가 2대에 걸쳐 가꿔온 사유림이다. 이씨 부자가 지금은 창원시 소속으로 변경된 당시 마산 평지산에 편백을 심은 건 1972년부터다. "선친이 일제시대 일본에서 고철 장사를 하며 돈 좀 벌었지요. 당시 편백 목재가 일본에서 비싸게 팔리는 것을 보고 고향에 편백을 심자고 결심했어요."
목재를 얻을 목적으로 시작된 나무 심기는 그때부터 5년간 이어졌다. 비탈진 곳과 평지에 매일 200~300그루씩 줄을 잰 듯 1m 간격으로 묘목을 심었다. 1976년 마침내 목표로 했던 50만 그루 묘목이 평지산 일대에 빼곡히 들어섰다.
이씨 부자의 기대를 안고 쑥쑥 자란 편백나무 숲은 평지산은 물론 인근 마을 주민들의 일상도 바꾸었다. 주민들이 숲을 산책하고 약수터에서 물을 떠갔고, 인근 도시에서도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씨 부자의 마음도 달라졌다. 숲을 벌목해 목재로 팔겠다는 당초 생각을 접고 지역민들의 휴식처로 숲을 계속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이씨는 "말 못 하는 나무라도 정성으로 키웠더니 도저히 내 손으로 자르기가 싫더라"고 말했다.
숲을 지키기로 결심한 이씨 부자는 이번엔 숲 속에 약 1.5㎞ 길이의 올레길을 만들어 등산객이 길을 잃지 않도록 표지판을 세우고 쉼터도 지었다. 사유지지만 숲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다만 "절대 담배 피우면 안 되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하고 당부할 뿐이었다.
하지만 최대 위기는 1990년 찾아왔다. 산불이 나서 숲의 3분의 1이 잿더미가 됐고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앓아 누웠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엔 인근 주민들이 일제히 팔을 걷어붙이고 복구에 나섰다. "주민들이 모두 내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식재를 도와줘 10년 만에 숲을 대부분 복구할 수 있었지요."
편백 숲은 이젠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주말마다 100여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하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이씨에게 고민이 생겼다. 남동생 일규씨와 지인 서너 명과 함께 숲을 관리하고 있지만 모두 고령이라 "산길을 오르기가 버겁고 가지치기 작업도 점점 힘들어졌다"고 한다. '땅을 팔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주변에서 자주 들리지만 이씨는 "44년간 정성을 쏟은 숲이 남의 손에 들어가 벌목되는 건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산을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없더라도 책임 있는 기관이나 지자체에서 휴양림으로 잘 관리해주면 좋겠는데…." 이씨의 바람은 소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