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국을 방문 중인 말렌코프가 마침내 망명을 결심하고 영국 기관에 보호를 요청했다.' 이어지는 문장은 더 천연덕스럽다. '그는 앞으로 최고급 소련 기밀을 속속 폭로할 것으로 보인다.' 소련 공산당 일인자였던 사람이 서방에 망명하다니? 독자들은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이날은 만우절이었다.
▶글쓴이는 천관우(千寬宇). 서른한 살의 조선일보 논설위원. 그는 부스스한 머리에 종종 고무신 신고 출근하고, 줄담배에 말술[斗酒]을 사양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물서넛에 서울대 사학과 졸업 논문으로 쓴 '반계 유형원 연구'가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찬사를 들은 뛰어난 역사가요, 언론인이었다. 1956년 4월 1일 천관우가 시작한 조선일보 칼럼 '만물상'이 오늘로 꼭 60년을 맞았다.
▶만물상(萬物相)은 삼선암·옥녀봉 같은 기암괴석이 오묘한 금강산 최고의 경승지다. "그곳의 조화와 무궁(無窮)을 떠올리며 역사의 물결에 부침(浮沈)하는 현실의 천태만상을 그리겠다"는 게 천관우가 첫 회에서 밝힌 '만물상'의 작명(作名) 이유였다. 칼럼이 시작된 지 사흘 만에 나온 게 '음악회와 기침'이었다. '만물상'은 뒷골목 하찮아 보이는 얘기부터 세계사의 물줄기에 관한 것까지 온갖 주제를 다뤘지만 정공법은 아니었다.
▶'만물상'은 주장을 담되 조급하게 안으로 뛰어들려 하지 않는다. 절박한 주제라도 경쾌·통쾌하게 읽히도록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프게 꼬집는 '꼬십'도 필요하고 매섭게 까는 '까십'도 필요하다. 천관우와 고병익·최석채·선우휘·이어령·홍사중 같은 선배들이 중심이 돼 이런 전통을 만들고 이어왔다. 그때는 컴퓨터 자판 한 번 두드리면 동서고금의 역사와 지식이 튀어나오는 시대가 아니었다. 시대를 꿰뚫는 통찰과 강기박람(强記博覽)의 지식을 안에서 숙성시켜 향기로운 글로 펼쳐낸 선배들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1년에 300편씩으로만 쳐도 그동안 1만8000편이다. 초기 200자 원고지 다섯 장가량이던 원고 분량이 지금은 6.2장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단락을 나누는 검은 삼각형 '▶'을 네 개로 한정하고 있지만 60년대만 해도 글 하나에 일곱 개씩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역사의 물결에 부침하는 현실의 천태만상'은 크게 달라질 리 없다. 일자리 구하기, 아이 낳아 키우기는 그때나 이제나 어렵고 정치가들은 여전히 얼굴이 두껍다. 잔잔하되 매섭게 민초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노력 역시 달라져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