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3일 변호사 M씨가 '계좌 이체로 받은 변호사비에 대해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았다고 과태료를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며 국세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계좌 이체는 현금영수증 발급 대상"이라며 2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물품과 서비스 구입 대금을 계좌 이체한 경우에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한다고 본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그동안 변호사 등 전문직과 학원 등 자영업자들은 고객의 현금영수증 발급 요구를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대법원이 명확한 법률 해석의 기준을 세운 것이다. 대법원은 결정문에서 "소비자로부터 은행 계좌로 대금을 받는 계좌 이체는 현금을 받는 방식 중 하나"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현금영수증 발급 제도는 고소득 전문직 사업자 등의 소득을 양성화해 세금 탈루를 방지하고, 과세(課稅)의 직종별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것"이라고 했다.
2014년 서울 서초세무서는 M변호사가 사건 수임료 1억1000만원을 계좌 이체로 받고서도 의뢰인의 요청이 없었다는 이유로 현금영수증을 떼주지 않은 사실을 적발해 과태료 5500만원을 부과했다.
소득세법에 따르면 변호사의 경우 10만원 넘는 수임료를 현금으로 받으면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도록 돼 있는데 ‘계좌 이체’를 현금 거래로 간주해 과태료를 매긴 것이다. 이에 M변호사는 “계좌 이체는 현금 거래로 볼 수 없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은 “계좌 이체를 현금 거래로 보는 게 맞고 따라서 현금영수증도 발급해야 한다”며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소득세법상 현금은 지폐나 주화를 의미한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계좌 이체는 현금 거래가 아니다”며 1심을 뒤집었다.
국세청은 이번 대법원 결정을 반기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대법원 결정으로 탈세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고소득 전문직의 세원(稅源)이 한층 투명해지고, 일반 직장인들은 계좌 이체로 서비스나 물품을 구입할 때도 현금영수증 발급을 요구할 수 있게 돼 연말정산에서 추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2010년 현금 거래가 많아 탈세가 쉬운 47개 업종에 대해 고객 요구를 불문하고 현금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아 국세청에 적발된 위반 사례는 지난해에만 4903건, 부과된 과태료는 80억원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