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작년 12월 이세돌 9단에게 상대를 밝히지 않고 바둑 대국을 제안하며 100만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이 9단은 비공개계약에 서명한 뒤에야 상대가 인공지능 알파고임을 통보받았고 대국에 응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변호사 몇몇은 그래서 이번 승부가 '불공정 계약'이었다고 말한다. 구글은 석 달 전 호텔을 예약하며 다른 사람 명의를 쓰고 행사 목적도 밝히지 않았다.

▶'옳은 일을 하자(Do the right thing)'는 게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모토다. 하지만 정작 무슨 일을 왜 하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게 또 구글이다. 이번 대국에서도 구글은 알파고에 대해 사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다 알파고가 대국에서 잇따라 승리한 뒤에야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가 트위터에 알파고가 대국 당시 계산했던 승률이나 초반에 실수했던 부분을 흘리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허사비스는 사람들 관심이 절정에 달했던 시점에 KAIST 공개 강연을 열어 대대적인 인공지능 선전장으로 삼았다. 이세돌이 4국에서 승리하자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깜짝 등장해 축하하는 일도 있었다. 정보를 틀어쥐고 국면마다 홍보 효과를 극대화한 행마(行馬)였다.

▶일주일 새 구글 회사 가치가 58조원 넘게 올랐다고 한다. 전 세계 언론들이 매일 수천 건씩 기사를 쏟아내고 구글 직원들 사진이 신문 1면을 점령했다. 구글은 IBM, 애플 같은 경쟁사를 제치고 인공지능 분야의 리더로 떠올랐다. IT업계에선 구글이 챙긴 실리가 드러난 것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애초에 구글이 인공지능으로 바둑에 뛰어든 것은 자사의 인터넷 검색 기능을 소비자 의중을 수십 수 앞서 예측하는 형태로 개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4국에서 알파고가 패하자 구글이 "버그를 보완할 수 있게 됐다"며 반긴 것도 이런 이유다. 구글의 검색 서비스는 눈부시게 진화할 것이다.

▶이번 대국을 돌아보니 재주는 이세돌이 부리고 이득은 구글이 다 챙긴 것 같다. 인터넷에는 '구글이 얄밉다' '대국료 1억8700만원 받고 수십조원을 헌납했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구글의 주도면밀한 인공지능 실험에 온 나라가 들러리 선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씁쓸해 할 일만은 아니다. 구글이 이세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인공지능에 관심을 보였을까. 곧 알파고가 보통 사람들에게도 '승부'를 걸어올 것이란 현실을 이렇게 실감 나게 깨닫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닥쳐올 변화에 지금부터 준비를 서둘러야 훗날 이번 일을 "입에 쓴 보약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