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7시 사이에 서울 강남과 종로 일대에 로밍 휴대전화 사용이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죠? 외국인 관광객이 몰린다는 겁니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의 테크루 올게사 아베베(36)씨는 연구실 컴퓨터 모니터 화면 속의 데이터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더니 씩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 시간대 이 지역에 외국인 전용 교통수단을 마련하면 관광객들의 만족도가 올라갈 거예요. 이게 바로 '데이터 마이닝(mining)'의 역할이에요."
테크루씨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온 유학생이다. 3년 전 아내와 아들, 딸을 고향에 남겨두고 1만㎞ 떨어진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두 번째로 큰 아다마과학기술대(ASTU)의 공과대학 부학장까지 지낸 '교수 유학생'이다.
테크루씨가 한국에서 박사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이장규(70) 전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와의 인연 때문이다. 이 교수는 2011년 서울대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아다마과학기술대 총장에 취임했다. 아다마과학기술대는 에티오피아에 생긴 첫 과학 기술 거점 대학이다. 하지만 나라가 가난하다 보니 컴퓨터 등 기자재와 도서, 연구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학생 1만4000여명에 박사 학위를 가진 교수가 50명밖에 안 될 정도였다.
이 총장이 2013년 교수진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1호 유학생'으로 선발해 서울대로 보낸 사람이 테크루씨다. 그가 내년쯤 박사학위를 받으면 아다마과학기술대 교수 유학생 출신 '1호' 박사가 된다. 테크루씨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같은 연구실의 맹욱재(28)씨 등과 팀을 이뤄 2014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주최한 '관광 빅데이터 분석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작년엔 서울대 BK21 사업단이 주최한 대회에서도 은상을 탔다.
에티오피아에 가족들을 남기고 온 테크루씨는 지난 3년간 고국에 딱 한 번 다녀왔다. 서울대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학업을 이어온 터라 비행기 삯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테크루씨는 2014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유학 생활을 접어야 할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는 "그때 지도 교수님과 동료들이 연구 프로젝트를 소개해주면서 여러 가지로 도와줘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테크루씨는 내년이면 박사과정 공부를 마친다. 그는 "한국의 단골 순댓국집 주인 아주머니가 '먼 나라에 와서 고생한다'며 음식을 얹어주고 어르신들이 '에티오피아가 6·25 때 한국을 도왔다'며 격려해줬다"며 "한국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조국의 과학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