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열렸던 코오롱스포츠 봄·여름 컬렉션 소개 행사. 회전초밥 식당을 행사장 안에 설치해 눈길을 끌었다(왼쪽). 푸드 스타일리스트 류지연씨가 광고 촬영을 하는 스태프와 배우들을 위해 준비한 도시락의 일부. 과일을 후식으로 담아서 보냈다.

'송파 류선생'이라고 불리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류지연(43)씨는 '전지현 전담'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전지현이 광고를 찍거나 영화 촬영할 때 도시락이나 간식을 대개 류씨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기 때문이다. 류씨는 본래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 그가 음식을 만들고 테이블 세팅을 하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한 건 2007년 무렵부터다. 몇몇 연예인들이 은밀하게 그를 찾아 집들이 음식과 도시락을 부탁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전지현·김사랑·정려원·송중기 같은 연예인이 촬영할 때 음식을 해주는 이른바 '프라이빗 케이터링' 사업가로 활동하게 됐다. 류씨는 "빵을 좋아하는 배우가 있고 국과 반찬을 곁들인 밥을 원하는 배우도 있다. 그때그때 식성에 맞게 제철 음식으로 만들어 집 밥처럼 갖다주려고 한다"면서 "보통 주문을 받으면 점심 식사 외에도 과자나 과일 같은 간식, 커피나 차까지 코스로 차려준다"고 했다.

음식을 부탁받은 장소에 차려준다는 뜻의 '케이터링'이 최근 각종 광고 촬영이나 브랜드 행사의 '주인공'으로 부상하고 있다. 어떤 음식을 갖다놓느냐에 따라 촬영 현장이나 행사장의 격(格)과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말도 있다. 연예인들의 인기도 촬영장 음식으로 가늠할 수 있다고 할 정도다.

연예인들 "○선생님 밥만 먹어요"

서울 이촌동에서 요리주점을 운영하는 정지원(43)씨는 작년 4월 연예인 김나영이 제주도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피로연 음식을 맡았다. 정씨는 "친한 연예인들이 간혹 촬영장에서 먹을 음식을 부탁하거나 생일, 결혼식, 아이 돌잔치 음식을 부탁하곤 한다"면서 "어떤 음식이 놓여 있느냐가 사실 그 현장의 분위기를 살릴 때가 많다. 케이터링의 역할이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광고 촬영장은 밥이 현장을 움직이는 대표적인 장소다. 수십 명의 스태프가 새벽부터 작업을 하는 예민한 환경이다 보니 밥을 잘 챙겨 먹기가 쉽지 않다. 이럴수록 근사하게 차려진 식사가 도착하면 분위기가 살아나기 마련이다. 류지연씨는 "예전엔 광고 촬영장에서 음식을 그때그때 시켜 먹거나 사다 먹었는데 바쁜 현장에선 이마저도 쉽지 않다 보니 5~6년 전부터는 아예 미리 음식을 맞춰 주문하게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광고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밥, 국, 각종 기본 반찬으로 구성되는 무난한 메뉴를 처음엔 다들 선호했으나 2~3년 전부터는 몇몇 스타의 입맛까지 고려한 '까다로운 케이터링'이 유행하게 됐다"고 한다. 한 광고 기획사 간부는 "어떤 여배우가 채식주의자라고 해서 채식으로만 주문한 적도 있고, 어떤 가수는 술을 한잔 마셔야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서 술과 안주 위주로 구성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몇 연예인은 촬영 현장에 도착하는 음식을 두고 경쟁까지 벌인다. '근사한 음식을 받는 게 톱스타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톱스타 A씨는 촬영장에 어떤 음식을 갖다놓느냐에 따라 촬영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는 연예인으로 꼽힌다. "오늘은 좀 우울하니 꼭 돔 페리뇽(샴페인 브랜드)을 갖다놓고 여기에 곁들여 먹기 좋은 유기농 음식을 안주로 차려 달라"고 요구하거나 "다이어트 중이니 제철 과일과 각종 야채 주스를 놓아달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가 요구하는 케이터링 조건에 맞추려면 200만원(20명 기준) 정도가 든다고 한다. 한류 스타로 유명한 배우 B씨 역시 드라마로 몸값이 치솟은 이후로는 모든 광고·화보 촬영 때마다 "에피타이저·메인코스로 짜인 제대로 된 정찬에 디저트, 커피까지 완벽하게 세팅돼 있는 촬영장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경우다. 광고업계에서 "스태프는 예산 아끼려고 5000원짜리 도시락을 먹는데, 톱스타 한 명 때문에 광고 예산이 이리저리 춤추는 걸 보면 어이가 없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튀어야 산다…콘셉트 경쟁 치열

광고 촬영장에서 음식의 격을 두고 경쟁을 벌인다면, 각종 기업 행사장에선 음식에서도 아이디어 싸움을 벌인다. 정지원 셰프는 "음식으로도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케이터링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가령 담양에서 만든 제품을 알리는 자리라면 조릿대를 꺾어 만든 식탁에 떡갈비와 죽통밥을 한 입 크기로 만들어 올리는 식인 거죠. 음식만 봐도 이 회사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알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각종 기업 행사 케이터링을 15년 동안 했다는 '더 스푼' 방혜경 대표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방 대표는 "먹는 순간 오감을 통해 이야기가 전해지도록 하는 게 케이터링의 진짜 목적"이라고 했다. "만약 해조류로 만든 화장품을 홍보하는 자리라면 그 해조류를 넣어 만든 수프와 샐러드, 빵까지 내놓아서 먹고 마시면서 그 성분의 건강함을 알려주는 거죠." 2013년 패션 회사 에르메스가 그해 가을·겨울에 스포츠를 테마로 한 옷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스키장 매점이 떠오르도록 어묵과 핫도그, 동치미 국수를 차려놓은 것이나 지난 1월 코오롱스포츠가 '또 다른 발명(re-invent)'이라는 주제를 내세우면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 초밥 식당을 행사장에 만들어놓은 것 역시 음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갤러리 케이터링은 '은은하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를 개관할 때 손님들을 위해 내놓는 음식은 반대로 대개 '튀지 않고 은은해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방 대표는 "갤러리에 내놓는 음식은 보통 그림이나 작품보다 돋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면서 "색이 없는 음료만 놓는다든가, 국물이 튀지 않는 음식만 놓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정지원 셰프는 "예전 서미갤러리 전시 때 1980년대 미국 작가 작품이 걸린 적이 있다. 그때 1980년대 미국 음식 위주로 놓았다. 이때도 음식이 그림보다는 튀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