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열이 남자친구처럼 보낸 메시지로 꾸민‘심쿵 잠금 화면’(오른쪽)과 제국의아이들 멤버 동준이 연인에게 보내는 것처럼 만든 영상(왼쪽). 요즘 20대 여성들이 애용하는 가상 연애 콘텐츠다.

"류준열 부재중 전화(5)/ 보고 싶다/ 내일 만날래?"

요즘 직장인 유재은(25)씨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요즘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인 류준열이 남자 친구처럼 남긴 부재중 전화와 문자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가상(假想)의 문자 알림이 적힌 사진이다. 유씨는 "현실에 없는 남자 친구에게 카톡을 받는 것도 좋은데 그 대상이 류준열이면 설레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라며 "가짜인 걸 알면서도 잠금 화면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20대 여성들이 가상 연애의 늪에 빠졌다.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불타는 청춘'처럼 삼인칭 시점에서 바라보던 타인의 가상 연애가 일인칭 시점까지 확장했다. TV, 인터넷 동영상, 게임까지, 나 홀로 연애할 수 있는 매체의 종류도 다양하다.

가짜여도 최대한 현실적이게

류준열 문자처럼 '심쿵(심장이 쿵쾅거린다의 줄인 말) 잠금 화면'이라 불리는 가상 문자 메시지는 좋아하는 연예인으로부터 문자를 받은 것처럼 스마트폰 잠금 화면을 꾸며 대리만족하는 놀이다. 고등학생 사이에서 시작돼 중년층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응답하라 1988'의 택이·정팔이, '치즈인더트랩'의 유정 선배처럼 드라마 속 주인공에서부터 하정우·유아인 등 연예인까지 대상도 다양하다. 자신이 원하는 내용과 주인공을 정해 잠금 화면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생겼다.

연예인이 남자 친구인 듯 착각하게 하는 영상도 인기다. 콘텐츠 제작 벤처 '메이크어스'에서 만든 '딩고 콜링' 영상은 연예인이 등장해 연인인 듯 안부를 전한다.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지코가 영상 통화로 "잘 있었어? 밥은 먹었니?" 하고 묻는 식이다. 웹 드라마 '두근두근 가상연애'는 시청자가 여자 주인공 시점에서 회사 남자 동기와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는 사내 드라마. 남자 주인공은 시청자가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카메라를 응시하며 손을 내밀고 "오늘 저녁에 뭐 해요?"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앉은 자리에서 드라마 8편을 다 봤다는 이신애(28·직장인)씨는 "드라마만 봤을 뿐인데 비밀로 직장 동료와 연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IT 회사 '네오터치포인트'가 만든 '내 손안에 남친'은 일인칭 가상 연애 모바일 콘텐츠. 아이돌그룹 멤버가 주인공으로 나와 목걸이를 선물하고 불만도 털어놓는 식이다.

왕자님과의 연애 실현해주는 게임도

여성의 취향을 사로잡는 내용과 그림으로 꾸민 연애 시뮬레이션(연시) 게임‘로맨틱 프린세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도 인기다. 일명 '연시 게임'이라 불린다. 게임 속 인물과 연애하는 프로그램이다. 자신이 원하는 남성과 데이트 코스를 선택하는 등 사용자의 공략에 따라 결말이 달라진다. 게임 업체 '7days'가 만든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인 '21일 남친 만들기'의 배경은 학교로, 선배·소꿉친구·엄친아 등 5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또 다른 회사인 '글리터'에서 선보인 여성형 게임 '키스 스캔들'은 5만 건의 다운(플레이스토어 기준)을 돌파했다. 유명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과 인지도 높은 성우를 캐스팅해 여성들의 취향에 맞췄다. 최근 드라마로 제작된 인기 웹툰 '치즈인더트랩'도 올해 상반기 내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실패' 두려운 젊은 세대, 가상 연애에서 위로받아

가상 연애 붐은 '삼포 세대'가 낳은 자화상이란 분석이 많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취업난으로 실패와 좌절이 일상 다반사가 된 상황에서 연애마저 '썸'만 타다 끝날까 봐 두려워한다"며 "그렇기에 실패 위험이 없고 돈도 안 드는 가상 연애에 빠지는 것"이라고 했다. 곽 교수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갈구하는 여성의 경우 완벽한 가상 남친에 더 빠져드는 것"이라며 "어쩌면 '남자 친구'가 아닌 '위로 친구'를 찾는 환상 놀이"라고 했다.

연애 컨설턴트 이재목씨는 "아직까지 연애에 실패하면 남자보다 여자가 입는 타격이 크다는 우리 사회 인식 때문에 여성들이 위험 부담이 없는 가상 연애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상 연애 콘텐츠를 통해 어떤 행동과 말이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지를 배우는 '연애 참고서'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