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태평무(太平舞)의 새로운 '여왕'이 나왔다. 문화재청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인간문화재)로 양성옥(62)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인정 예고했다고 1일 밝혔다.
지난달 21일 별세한 강선영 태평무전수관 이사장이 1988년 태평무 보유자가 된 이래 처음으로 국가가 지목한 '후계자'가 출현한 것이다. 무용계에서 인간문화재는 자기 춤을 전승할 전수교육조교를 뽑고 이수자를 양성하는 등 명예와 권력이 집중되는 자리다.
한국무용의 '간판' 격인 태평무는 궁중 복식 차림으로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춤으로, 무용가 한성준(1875~1941)이 한영숙과 강선영에게 전승한 것이다. 양 교수는 1980년부터 강선영 문하에서 춤을 배웠고 1996년 태평무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됐다. 경희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무용단 주역 무용수, 서울예술단 무용감독 등으로 활동했으며, 신무용에서도 이름이 높은 무용가다. 문화재청은 "장단 변화에 따른 춤사위의 표현과 이해가 뛰어나고, 리더십과 교수 능력을 잘 갖추고 있어 전승 능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무용계에선 '서열 파괴의 이변이 일어났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12월 7일 태평무 보유자 심사를 받은 사람은 모두 4명이었다. 강선영류(流)의 이현자(80)씨, 이명자(74)씨와 양성옥 교수, 그리고 한영숙류의 박재희(66)씨다. 이 중 연륜 있고 춤 실력도 뛰어난 이현자씨가 보유자가 되리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가장 젊은 양 교수가 낙점을 받은 것이다. 무용계 한 인사는 "문화재청이 '전승 능력'을 중요한 선정 요소로 삼았다는 것은 나이가 적은 사람을 선호했다는 뜻"이라며 "평생 춤에 헌신한 예인들을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홀대했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심사는 첫 '개방형'으로 이뤄졌다. 그동안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던 유파도 도전장을 내밀 수 있다는 의미였으나, 한영숙류는 이번에도 태평무의 문화재 진입엔 실패했다. 같은 시기 심사가 진행된 승무와 살풀이춤의 보유자 인정 예고는 다음 달 문화재위원회 회의 이후로 미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