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회사에 다니던 김모(52)씨는 2003년 사장이 "사업 자금 3억원을 빌려야 하는데 보증인이 필요하다"고 해 울며 겨자 먹기로 연대보증을 섰다. 자금만 제대로 융통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던 회사는 건설 경기 침체로 파산했다. 사장은 도망쳤다. 일자리를 잃고 빚까지 떠안게 된 김씨는 대리운전 등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하지만 10여 년 사이 빚은 4억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집도 가압류당했다. 그는 "집이 언제 경매로 넘어갈지 몰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초등학생 딸을 둔 박모(43)씨는 아버지 회사에 등기이사로 있다가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리며 빚 5억원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70세가 넘은 아버지는 개인 파산을 신청했고, 연대보증을 섰던 박씨가 빚을 갚아야 하게 된 것이다. 박씨는 "최근 보증사인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서 내 집을 경매에 부치겠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눈물도 나지 않더라"고 했다.

연대보증의 덫은 유명인도 피할 수 없다. 연예인 김구라씨는 아내(이혼)의 연대보증으로 수십억원대 빚더미에 앉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공황장애까지 겪고 있다면서 심적인 고통을 토로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가 지난 11일 인사청문회에서 연대보증을 잘못 서 곤욕을 치른 사연을 공개한 뒤 연대보증의 폐해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연대보증은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대신 갚을 사람을 정해놓는 제도다. 과거 기업들은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에서 발급한 보증서를 담보로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았다. 기업이 부도나면 일단 신보와 기보가 갚아준다. 대신 대출 당시 연대보증을 선 실제 경영자나 지인들이 신보·기보에 빚을 갚아야 하는 구조다.

이 제도는 후진적 금융 관행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2012~2013년 단계적으로 폐지됐다. 하지만 그 전에 보증을 선 사람들은 아직도 연대보증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에 따르면 작년 기준 아직 갚을 빚이 남아 있는 연대보증인은 1만727명, 연체액은 1조5406억원에 이른다. 기술보증기금에도 1만28명, 2조7328억원이 남아있다. 아직도 연대보증 빚에 허덕이는 이가 2만명이 넘고, 평균 2억원씩을 갚아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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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대부업체 등 사(私)금융권의 연대보증이다. 사실상 금융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데다 규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3년 대부업체 신규 대출에 대해 자율적으로 연대보증을 폐지하도록 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작년 초 윤모씨는 친구 이모씨에게서 대부업체 연대보증을 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씨는 주민등록증 사본 한 통을 요구했고 대부업체에서 전화를 할 거라고 했다. 별생각 없이 연대보증을 섰던 윤씨는 작년 말 대부업체에서 "이씨가 빚 1억원을 갚지 않고 잠적했으니 당신이 갚아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연 30%에 이르는 이자에 원금까지 갚아야 할 처지에 놓인 윤씨는 "믿었던 친구한테 배신당한 것도 모자라 금전적 압박까지 받게 되니 수면제를 안 먹으면 잠을 못 자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대보증으로 진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면 신용회복위원회와 국민행복기금이 운영하고 있는 '연대보증 채무 지원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신용회복위원회 등은 빚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금융기관과 협의해 이자와 원금 일부를 탕감해주고 줄어든 빚을 8~10년에 걸쳐 나누어 갚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