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아이언맨, 해골….

지난 주말 IBSF(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월드컵 3차 대회(독일 퀘닉세) 남자 스켈레톤 경기는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국내 방송에 중계됐다. 시속 120㎞에 육박하는 아찔한 레이스만큼이나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 선수들의 개성 만점 헬멧이었다.

['썰매 3대 종목' 중 하나, 스켈레톤은?]

북극곰이 새겨진 헬멧을 쓴 바렛 마르티노(캐나다)의 레이스는 마치 북극곰이 눈밭을 달리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바렛은 지난 시즌부터 스키에서 스켈레톤으로 종목을 바꿨다. '야성이 넘치는 북극곰처럼 (빙판 위에서) 아드레날린을 쏟아붓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는 디자인이라고 한다. 북극곰을 새긴 캐나다 선수는 과거에도 많았다. 전 세계 북극곰의 절반가량이 캐나다에 서식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캐나다를 대표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상징물을 헬멧에 새기는 것은 흔한 방식이다. 지난해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여자 스켈레톤 선수 케이티 얼랜더는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 디자인 헬멧을 선보였다. 당시 얼랜더는 "독수리처럼 시상대로 날아오르겠다"고 했지만 4위에 머물러 아쉽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봅슬레이는 단체 종목 특성상 선수 개인의 개성을 나타내기가 어렵고, 누워서 썰매를 타는 루지는 헬멧이 아니라 발이 카메라에 잘 잡힌다. 반면 스켈레톤은 머리를 앞으로 엎드려서 타기 때문에 헬멧이 눈에 잘 띈다. 썰매 3대 종목 중에서 스켈레톤 선수의 헬멧이 독특한 이유다.

헬멧을 통해 선수 개인의 사적인 취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한국의 기대주인 윤성빈(한국체대)은 지난 시즌부터 '아이언맨'과 흡사한 헬멧을 착용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하얀 민무늬 헬멧이었다. 윤성빈은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와 '어벤져스'의 '광팬'이다. 그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 관계자는 "아이언맨처럼 한국 썰매의 영웅이 되고 싶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썰매 안쪽에도 아이언맨 그림을 새겨놓았다. 그는 아이언맨 헬멧을 착용하기 시작한 지난 시즌에 월드컵 메달을 3개(은 1, 동 2)나 목에 걸었고, 올 시즌 3차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땄다.

헬멧을 통해 유머 감각을 뽐내는 선수도 많다. 캐나다의 남자 선수인 존 페어번은 자신의 성(fairbairn)을 발음하기 어려워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민했다. 마침 장내 아나운서가 '브레인(brain)'으로 잘못 부르는 것에 '영감'을 받아 뇌가 그려진 헬멧을 쓰기 시작했다. 남자 스켈레톤의 요셉 루크 체치니(이탈리아)는 종목 이름(skeleton)이 '해골'과 같다는 점에 착안해 해골 디자인 헬멧을 쓴다.

번잡하다는 이유로 민무늬를 고집하는 선수도 있다. 세계선수권 통산 3회 우승자인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가 대표적이다. 그의 헬멧은 온통 검은색이다. 동계올림픽에 통산 4회 출전한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는 "과거 나뿐 아니라 한국 선수는 전부 민무늬 헬멧을 썼다"며 "개성 넘치는 세대가 등장하면서 윤성빈 같은 선수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헬멧의 가격은 보통 600유로(약 80만원) 안팎이다. 선수들은 헬멧을 구매한 뒤 자신이 아는 도색 전문 업체에 맡겨 원하는 디자인을 새긴다. 도색 비용은 수십만원 정도라고 한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성연택 사무국장은 "헬멧 디자인에 대한 국제연맹의 별도 규제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헬멧 규격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헬멧이 통과한 시점을 기준으로 기록을 측정하기 때문에 어떤 부착물도 붙일 수 없다.